안녕, 나의 사랑, 바르셀로나
런던은 난생 처음 유럽의 첫 도시라 얼떨떨했고, 로마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했다. 암스테르담은 공포 그 자체였고 브뤼셀은 빛의 속도로 지나갔고 파리는......하아......아예 말을 말자. 의외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매력의 도시는 바르셀로나였다.
물론 신고식을 치렀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하철에서부터 나를 노린 2인조 좀도둑에게 털렸다.
그들이 가져간 건 빵, 치즈, 가죽 필통.
지갑은 이미 베니스에서 털렸기에 없었고 여권은 돌돌이 속에 고이 넣어두었으므로 나의 짐작은 내 가죽 필통을 지갑이라 여겼던 것 같다.
만약 그들이 카메라를 가져갔다면 여행의 사기가 꺾이고 바르셀로나라면 치를 떨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도우사 카메라는 배낭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다.
그쯤 되니 오히려 그들이 불쌍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빵과 치즈를 카메라보다 귀하게 여겼을까 싶었으므로.
덕분에 허락된 사흘 동안 가우디라는 건축가의 아우라에 취해 그 도시와 사랑에 빠졌고 헤어진 즉시 돌아갈 날만 꿈꿨더랬다.
그 꿈은 6년 뒤에 이루어졌다.
바르셀로나는 내 사랑에 쐐기라도 박겠다는 듯 그 도시에 사는 남자도 선물로 보내주었다.
예정에 없이 한 달이라는 시간을 달콤함과 몽롱함에 도취되어 지냈다.
매일 밤 도시의 모세혈관까지 구석구석 함께 돌아다녔다.
혼자 지내는 낮에는 구엘공원으로 가는 길고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 탔는지 모른다.
어떤 땐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때마다 아름다운 공원에 이르는 길이 고즈넉한 주택가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곤 했고 그토록 정교한 아름다움이 펼쳐진 공원이 무료로 전 세계 사람들을 맞이한다는 사실에 경외심마저 생기곤 했더랬다.
동네 고양이들과 눈을 맞추고 산책나온 강아지의 주인들에게 말을 걸곤 했다.
6년 전보단 바빠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어느덧 사랑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가야 했을 때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언제 다시 이 도시와 마주할지 알 수 없었으므로.
그리고 4년 뒤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길에서 만난 선량한 마리아 할머니조차 나에게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가방을 꼭 가슴에 끌어안고 다니라고 주의를 줬다. 낯선 남자가 말을 걸면 저쪽에 애인이나 아빠가 기다린다고 말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경외심이 일었던 구엘공원 가는 길은 이제 조악한 관광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로 빼곡해지고 말았다.
고양이들은 더 이상 나와 눈을 맞출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고 산책을 즐기는 강아지들도 사라졌다.
바르셀로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구엘공원의 꼭대기에서 사랑의 키스를 나누는 커플을 보며 나는 한없이 슬퍼졌던 것 같다.
사랑이 떠나갔으므로.
돌아오는 길엔 그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알려준 맛있는 음식점에서 타파스와 맥주를 실컷 먹고 마셨다.
맛있어서 오래도록 웃음이 나다가 다시 눈물이 났다.
나는 그렇게 너무나 아름다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나의 바르셀로나와 이별했다.
벌써 9년.
바르셀로나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도시가 되었고 구엘공원에 가려면 가난한 여행자로서는 몇 번이고 찾아가기엔 부담스러운 입장료를 내야 하고 어떤 구역은 입장 인원을 제한해서 예약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다시 바르셀로나에 갈 수 있을까?
라 람블라스 거리를 걷고, 밤 늦은 시간까지 좋아하는 스페인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기분이 동하면 디스코테카에서 동이 틀 때까지 춤을 추다 나올 수 있을까?
가우디가 만들어놓은 신비로운 곡선과 화려한 색깔들을 지나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맨 위에 올라 옛 사랑 이름이라도 외쳐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불쑥 생각난 걸 보면 스리슬쩍 그리워지긴 했나보다.
그럼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때까지 잘 지내시게, 바르셀로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