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꽃 향기에 잠기다
안달루시아에 왔으니 론다 같은 멋진 곳에 들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메스키타 사원에 가고 싶었다.
이슬람의 흔적을 살피는 것이 나에겐 좀 더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코르도바는 반드시 들러야 할 도시였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꽤 오래도록 이슬람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참 흥미로운 지점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을 때 스페인 북부에서마저 그 흔적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사실상 당시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도시가 코르도바였고, 그래서 무려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들여 지은 사원이 메스키타라고 들었다.
그러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그것 말고는 역시 무계획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짧게 머물고 세비야로 갔어야 했지만 때마침 축제를 맞이한 세비야에서는 카우치서핑은 물론이고 도저히 예산에 맞는 숙소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세비야는 포기하기로 하고 이곳에 조금 더 머물렀다가 다음 도시까지 쭉 가기로 했다.
일정이 늘어나니 내 발걸음은 더 느려졌다.
마음이 끌리는 집을 발견하면 그 앞에 오래도록 서서 저 안에 누가 살고 있을까 상상하는 일이 잦아졌고,
귀여운 꼬맹이가 나타나면 풀썩 앉아 녀석들이 나를 봐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침내 시선이 닿으면 함박웃음 지으며 인사를 건네거나,
동네 아이들이 골목에서 노는 모습을 훔쳐보며 슬쩍 내 어린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책을 읽는 아저씨도, 그 곁을 듬직하게 지키는 커다란 개도 내 존재를 인식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나도 책 읽는 거 좋아하는데 어쩌면 책 한 권도 안 챙겼을까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도시는 참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된 흔적, 자연의 풍요로운 모습, (날씨는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른한 열대의 기운까지....
그런데 내가 이 도시를 돌아다니는 동안 가장 황홀했던 건 향기 때문이었다.
노란 레몬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들 사이를 신기해하며 걸어가다가 키스하는 커플을 발견한 순간에도,
옛날 오래된 시절의 그리스 로마의 누군가가 한 땀 한 땀 박았을 모자이크와 정성을 들여 다듬었을 대리석 조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순간에도,
호기심 많은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가 나에게 다가왔던 순간에도,
그 향기가 함께했다.
걷고 또 걸어 도시에 어둠이 내린 순간에조차....
결국 나는 거리의 누군가를 붙잡고 물었다.
"이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 거죠?"
"아, 오렌지 꽃향기에요. 지금 모든 오렌지 나무에서 꽃이 피어 다들 향기를 뿜어내는 거랍니다."
"너무 아름다워요."
"그쵸, 참 사랑스럽죠!"
메스키타 사원의 신비한 곡선 사이를 거니는 건 역시 코르도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어째서 사원 하나를 짓는데 20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했던 곳이고,
카톨릭과 이슬람의 만남이 조화로워 기분 좋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끝내 나는 금세 바깥에 진동하는 오렌지꽃 향기의 향연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밖으로 나왔다.
눈이 부신 햇살과 싱그러운 오렌지 향기가 기다렸다는 듯 반겼다.
무심히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이 황홀한 향기를 감지하고 살아갈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누구든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행복할 테니까.
그러므로 나도 행복했다.
코르도바.
도시 전체가 오렌지꽃 향기에 잠기는 도시.
누군가 거기 어땠냐고 물으면 꼭 오렌지꽃이 피는 계절에 가라고 권하곤 한다.
미슐렝 레스토랑에 들렀는지 안 들렀는지 메스키타 사원의 곡선에서 길을 잃었는지 안 잃었는지 황금다리를 건넜는지 안 건넜는지 알키사르 정원을 거닐었는지 안 거닐었는지.......그런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다니기만 해도 황홀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기는 그때뿐일 것이므로.
나는 아치 사이에서 길을 잃었지.
가슴을 찌르는 특별한 감동으로 가득찼지.
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정원을 거닐었지.
꽃들이 피어나 향기를 뿜어내고 나는 그 향내음을 폐에 새겼지.
오렌지 꽃 향기 속에 잠겨 있는 도시는 아름다웠지.
오렌지 색깔로 길게 늘어난 햇살을 타고 아이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
나는 그렇게 잠시 꼬르도바에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