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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Jul 06. 2016

Maroon5_ She Will Be Loved

Sydney

시드니에 반 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회사원의 삶을 살았다. 7시면 눈을 뜨고 재빠르게 아침식사와 단장을 마친 뒤, 출근해서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을, 주말을 기다리는 그런 인생 말이다. 달랐던 점이 있다면 그리 사람이 많지 않은 달링하버를 지나 양복과 정장을 입은 수많은 회사원들이 바쁜 걸음을 걷는 윈야드 거리를 통과해 도심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하거나, 버스를 타고 하버브릿지를 건너며 창밖의 오페라 하우스를 감상하며 출근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비싼 방값을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다른 사람들과 집을 나눠서 썼는데 주말이면 다들 어디론가 떠나고 나 혼자 집을 오롯이 차지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집이 텅 빈 아침,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죄로 마주해야 하는 고요와 적막이 싫어 리모콘을 눌러 잠들었던 TV를 깨우곤 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외국에서 지낼 때는 아침에 눈을 뜨면 TV를 켜고 체널을 MTV로 돌렸다. 이국적인 풍경과 잘 모르는 외국어로 범람하는 영상의 망망대해에서 내가 가장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는 섬이란 그나마 익숙한 팝송들이 흘러나오는 MTV였기 때문이라고 멋대로 추측해본다.

잠이 덜 깨 나의 몽롱한 기분에 장단을 맞추듯 기가 막히게 거의 대부분 나를 맞이했던 노래가 마룬5의 ‘She will be loved’였다.



엇갈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전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사랑도 한심하게 엇갈려 있었다. 그래서 더 그 노래에 빠져들었다. 세상의 모든 슬픈 사랑 노래가 다 어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며 자꾸만 눈물을 쏟았던 시기였으니까.

그때 나에겐 눈을 감고 있는 순간조차 나를 지배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나의 모든 삶이 그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다. 

그에게는 많은 도움이 필요했고 기묘하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들이었기에 그때마다 난 그를 도왔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삶은 우리를 다른 곳으로 갈라놓았다. 나는 그와 함께하기만을 바랐기에 물리적 거리는 견딜 수 없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던 순간에조차 내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있어서 계속 강렬하게 그를 원할 뿐이었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의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 속에서 그가 전여자친구와의 추억에 잠긴다는 것마저 읽어내게 된 나는 점점 두려워졌다. 그렇게 계속 나를 잃어갔던 거다. 어쩌면 내가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그에게 나와의 물리적 거리가 정당화되어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먼 곳에 떨어져 있던 그는 언제나 상냥하게 안부를 물어왔다. 그러나 그의 무심한 상냥함은 나를 날카롭게 찌르곤 했다. 


혼자만의 사랑 속에 이별을 맞이한 나는 시드니의 거리를 걷다가,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웃는 낯으로 동료들과 고객들을, 새롭게 사귄 친구들을, 룸메이트들을 대했지만 그건 눈물을 머금은 ‘상처 입은 미소broken smile’이자 가면이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죽지 않고 계속 매일을 버텨나갔다. 메신저에 접속했을 때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길, 내가 보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내주길 바랐다. 집으로 가는 길에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가 손을 흔들며 나타나는 모습을 떠올렸지만 그는 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그가 그녀를 아름답게 빛나게 해주고 그녀가 그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했지만 그건 그냥 나의 희망 같은 것일 뿐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후렴을 간절하게 따라 부르곤 했다.


“She will be loved...

She will be loved...

그녀는 사랑 받게 될 거야...

그녀는 사랑 받게 될 거라고...”


시드니를 떠난 지 오래지만 문득 어디선가 이 노래를 만나면 주말 아침 홀로 남겨진 거실의 공기와 햇살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간절히 따라 불렀던 그 노래의 후렴은 그와 나의 이야기에 대한 헛된 공상이 아니라 망가진 내 마음이 불안한 내 미래에 거는 주문이었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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