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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Jul 13. 2016

Amy Winehouse_ Back to Black

Vienna

비엔나엔 출장으로 간 참이었다. 빡빡한 일정의 긴 하루의 끝에서 상사가 머무는 고급호텔의 로비에서 인사를 하고 나의 비즈니스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아무 바에나 들렀다. 망설임 없이 문을 밀고 들어가선 바텐더와 목례를 나눈 뒤 정중하게 말했다.


“Ein Schnäpse bite.”


우리말로 치자면 ‘슈납스 하나 주세요’ 정도.

슈납스가 이곳의 전통 증류주라고, 하루의 마무리를 하기에 적당한 도수를 가졌다고 알려준 건 비엔나의 클라이언트였다.

길고 얇은 샷 잔에 투명한 액체가 담겨 내 앞에 내려놓아지는 동안 진녹색 트랜치 코트를 입은 작은 동양 여자가 왜 늦은 시간에 바에 혼자 들어와 슈납스를 시키는지 궁금한 비엔나 사람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 그들은 그냥 조용히 저마다의 잔을 앞에 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거나 자신들의 흥겨움에 떠들썩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는 오른쪽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으로 잔을 잡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 뒤, 잔에 담긴 액체를 입속으로 털어놓은 뒤,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빈잔을 탁, 바텐더 앞에 올려놓고는 슈납스 값을 옆에 밀어두고 “Danke”라는 말을 남긴 뒤 바에서 나왔다.


싱글 룸 치고는 꽤 넓었던 호텔 방으로 올라와서는 아무 채널이나 틀어놓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가져간 노트북에 그날의 일과를 정리하는 것이 내가 일주일의 출장 기간 동안 하루를 마치는 방식이었다.

아, 하나가 더 있었는데 잠들기 전에 걸쭉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Back to black’을 듣는 것.

첫날 저녁 이어폰과 TV에서 동시에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우연의 일치를 겪은 뒤 내 멋대로 정한 일종의 규칙이었다.

원래도 못 말리는 감성주의자이지만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가면 그 성향이 더 짙어지는 경향이 있다.

작은 우연에도 열광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고나 할까.

그 밤의 우연에 꽂혀 의식처럼 일주일 동안은 매일 밤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그런 우연 말고라도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마신 뜨겁고 씁쓸한 슈납스의 여운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노래이기도 했지.



웅장하게 시작되는 전주가 끝나면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여자와 남자. 그 높은 온도를 간직하고 싶은 여자와 자신만의 핑계로 도망쳐버리는 남자. 물론 그 핑계가 자신의 본래 여친이라는 사실은 비극이다. 그래서 그녀는 흐르던 눈물이 마를 때쯤 다시 그가 없는 검은 공허의 상태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짝사랑 전문가인 나로선 동병상련이 느껴지는 슬픈 사연이었다.

그래서 노래를 들을 때마다 노래 속의 그녀에게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검은 공허로 돌아가겠다는 슬픈 그녀의 노래는 언제든 나를 슈냡스의 뜨겁고 씁쓸한 여운이 떠오르는 비엔나의 밤, 비즈니스호텔 방으로 데려가곤 했다.


몇 년이 지났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의 늪에 빠져 있던 어느 밤이었다.

오래도록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다 못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천안의 한 바에 끌려갔다. 그녀는 나에게 슈납스를 닮아 투명한 보드카 샷을 권하며 다 털어버리라고 했다. 그날 그 바에서는 각종 밴드들이 나와 자신만의 연주와 노래 실력을 뽐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 실력이...... 아, 말을 말자.

점점 비워지는 보드카샷의 숫자가 늘어가고 평소와는 다르게 취할수록 예민해지는 감각 때문에 바를 채우는 것이 음악인지 소음인지, 이 친구가 정말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것인지 고문하는 중인 건지 의문이 들 무렵 마지막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다.


뭔가 달랐다.

들으면 들을수록 쏙쏙 들어오는 가사와 신나는 리듬에 나도 모르게 어느새 맨 앞에서 놀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다음 곡도, 그 다음 곡도 너무 좋았다. 그러니 계속 열심히 춤을 추며 노래를 들었을 수밖에.

연주가 다 끝나고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순해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더니 악수를 청했다.

즐겁게 놀아줘서 고맙다고.


“최고였어요! 밴드 이름이 뭐예요?”

“감사합니다. 저희는 버스커버스커라고 합니다.”


그들이 끌어올렸던 열기가 엷어져가는 바의 어느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맙소사,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죽었대!”


이제 바에는 그녀가 남긴 노래들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그녀를 추모하는 건배 소리가 들렸다.

‘Back to black’이 바의 어둠을 채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정말 검은 공허로 돌아간 그녀와 비엔나에서의 밤들을 떠올렸다.

노래가 끝나갈 즈음 바텐더에게 투명한 보드카샷을 두 잔 주문해서 친구와 아무 말도 없이 마셨다.

잔속의 액체는 한번에 털어 넣었지만 빈 잔은 조용히 내려놓고 푸른 새벽의 거리로 나왔다.

그곳이 비엔나였으면 좋겠다고, 일주일 동안 묵었던 비즈니스 호텔 방으로 돌아가는 거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한여름의 축축한 공기를 뚫고 친구의 집으로 흐느적거리며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TV에서 버스커버스커가 나오는 걸 봤다.

경쟁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을 하는가 싶더니 봄의 캐롤 ‘벚꽃엔딩’을, 여수의 주제곡 ‘여수 밤바다’를 세상에 선보이는 등 굵직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때 나랑 악수한 사람이 저 장범준이었어’, 하며 혼자 흐뭇해하곤 했다.

이제 나는 ‘벚꽃엔딩’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초봄의 어느 밤이면 ‘Back to black’을 틀어놓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공수해온 슈납스 한 잔을 마시며 비엔나의 추억을 안주 삼아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추모하는 의식을 치른다.


오 그대여, 부디 검은 공허 속에서 평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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