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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재 Jan 25. 2021

색깔과 감정이 지워진 사회에 산다면?

영화 <더 기버: 기억 전달자>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보인다면 어떨까요? 고통도 사랑도 없는 사회는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 기버: 기억 전달자>는 매일 맞는 주사로 욕구를 빼앗기고 색깔은 물론 책, 춤, 음악, 인간 외 다른 동물이 소거된 흑백 사회에서 살아가는 조너선의 이야기입니다. 사계절과 희로애락이 없는 무채색 사회에서 구성원은 각 연령에 맞는 복장을 입고, 봉사와 훈련은 물론 휴식부터 취침까지 통제된 시간에서 생활합니다. 공동체를 이끄는 원로들은 아이들을 주시하다가 그들이 열두 살이 되면 역할을 부여해 질서를 유지합니다.


왼쪽부터 기억 보유자, 수석 원로, 기억 전달자 (사진 출처: orlandoweekly)


공동체의 많은 역할 중 ‘기억 보유자’는 가장 명예로운 직업입니다. 기억 보유자는 통제 사회 이전의 온갖 고통과 기쁨의 역사를 간직한 사람입니다.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치면 원로들은 지혜로운 기억 보유자를 찾아가 자문을 구합니다. 정직하고 용기 있는 조너선은 ‘기억 보유자’라는 직위를 부여받아요. 유일한 전임 기억 보유자는 이제 ‘기억 전달자’가 되어 조너선에게 기억을 전합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새하얀 눈의 촉감과 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올 때의 희열처럼 이때껏 조너선이 알지 못했던 세상은 놀랍습니다. 햇빛으로 넘실대는 바다 물결,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사람들,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순간은 충만하고 활기가 넘치지요.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어서일까요? 꿈결처럼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쟁과 코끼리 상아 채취처럼 잔인하고 폭력적인 인간의 면모 또한 목격하며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흑백 화면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조너선의 변화에 맞추어 빨간색을 비롯한 다양한 색깔들을 흡수합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흰 눈, 푸른 하늘, 초록 잎사귀의 색들이 모처럼 아름답게 보입니다. 다양한 색깔처럼 우리 내면의 감정들도 저마다의 빛을 뿜어내고 있겠지요.


기억 전달자는 조너선에게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네 안에서 외치는 소리”를 따르라고 조언합니다. 시스템을 통제하는 수석 원로는 사랑은 변덕스러운 열정일 뿐, 결국 인간은 서로를 경멸하고 죽인다며 고집스럽게 체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온갖 감정들을 알게 된 조너선은 사회에 순응하던 이전의 그가 아닙니다. 그는 마을을 벗어나 한계선 너머로 달려갑니다. 희망을 품은 발걸음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원작은 미국 작가 로이스 로리가 1993년에 발표한 소설로 이듬해 아동 도서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뉴베리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영화 감상 후 책을 읽었는데 간명한 문장 덕분에 단숨에 읽을 수 있었어요. 특히 감정 통제 사회에 관한 구체적인 설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원로들의 결정에 따라 ‘기초 가족끼리 ‘거주지’에 모여 사는 사회는 언뜻 무탈해 보이지만 집이 주는 온기는 찾을 수 없습니다. 자유의지가 박탈된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권리는 ‘출산모’에게만 있는데 출산이 끝난 후에는 노인을 돌보며 평생 육체노동을 해야 합니다. 산아 정책에 따라 쌍둥이 중 체중 미달인 아기는 ‘임무 해제’, 곧 죽임을 당합니다. 고통과 죽음을 알지 못하기에 보육사는 아기를 살인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통제 사회를 구축한 이유가 지금 우리 모습과 맞닿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목덜미가 서늘해집니다.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가 혼재해서 아름답지만 때때로 그렇기 때문에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세상이니까요. 다채롭고도 평화로운 공존은 현실과는 먼 이야기일까요? <기억 전달자>를 감상하며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감정을 곱씹어 보면 어떨까요? 여러분이 상상하는 이상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요.
  

• 다양한 <기억 전달자> 만나러 가기: 영화소설그래픽노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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