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산문집 <별것 아닌 선의>
여러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편인가요? 저는 가족에게 애정 표현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도 제가 표현하는 건 늘 쑥스럽고 서툰 편입니다. 돌아보면 좋아하는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면 매번 속으로만 배시시 웃으며 ‘참 좋은 사람이다’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고, 다시 반복하고요. 회사 선배에게 추천받은 책 <별것 아닌 선의>를 읽으면서 제가 경험한 고맙고 따뜻한 순간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별것 아닌 선의>는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소영 교수의 첫 산문집입니다. 개인적인 일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 소설, 영화, 그림책, 음악을 두루 소개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다정한 순간들을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특히 각별한 관계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수지 그림책 <파도야 놀자>에서 아이를 흠뻑 휘감는 파도의 푸른빛에 빗대어 풀어낸 대목이 좋았어요(당신이 나를 물들인다면). 복숭아처럼 두 뺨을 붉히며 아내와의 첫 만남을 이야기해 주었던 동료 선생님의 모습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포개어 소개한 글도 좋았고요(생의 가장 반짝이던 순간).
나의 결점을 통해 타인의 빈틈을 알아보고 다정한 이해의 눈길을 보냈던 저 순간과 같은. 그런 알아봄의 경험은 정의를 구현하고 세상을 바꾸는 데 하등 쓸모를 갖지 못하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서로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 되어줄 순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채 그럼에도 매일의 발걸음을 떼어놓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별것 아닌 것들일지 모른다. (p8)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책에서 독자를 향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이렇게 살아보려 합니다’ 하는, 작가의 소망이 담긴 문장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곰곰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나에게만 “고유한 의미를 갖는, 내가 살아 있음을 충만히 느끼게 해 준 어떤 선율, 어떤 장면, 어떤 냄새나 맛”(p62)이 무엇일지요.
<별것 아닌 선의>는 우리 각자가 간직한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온기가 가득한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일상에서 내가 받을 수도, 남에게 베풀 수도 있는 작은 호의들을 하나둘 되새겨 보았어요. 사려 깊은 시선이 깃든 이야기를 읽으며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고요. 만약 민망함을 견디고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면 순간의 행복이 증폭될 거라는 생각을 하며 '표현해 보자!'는 용기도 얻었고요. 그동안 우리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온 작은 선의들의 힘을 잊지 않는다면 긴 터널 같은 하루라도 기꺼이 견뎌낼 수 있을 거예요.
기억은 매개체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리 남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과 고마운 사람은 음악이나 책뿐만 아니라 과일이나 채소 안에서도 아련한 한 시절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솟아나게 할 수 있다. (p58)
관계의 밀도가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 기억들이 휘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영원히 남는다. 핏줄이 아니고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가 아니어도 그렇다. (p167)
우리가 세상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지금 저 모습으로 저 사람을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더 많이 만났으면 한다. 그런 사소한 게 무슨 소망이냐 할 테지만, 일생 동안 품을 바람 중 하나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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