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오다. (2018-09-15)
날이 좀 흐렸지만 걷기에 좋았다. 어느새 긴팔을 입고 선선한 가을 날씨를 만끽할 수 있는 요즘, 무더웠던 여름날이 지나간 사실에 새삼 감사하다. 느지막한 오후에 서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통인시장을 지나 쭉 걷다 보면 청운초등학교 맞은편에 류가헌 갤러리가 보인다.
그의 주민등록상 이름은 박근식. 그러나 '피터'라고 자주 불렸다. 피터는 1970년 초여름, 서울행 완행열차에서 '발견'되었다. 수십 알의 수면제를 삼키고 쓰러진 그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진정서가 들어있었다. 혼혈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절규와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빌린 박씨'란 6.25 전쟁 직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근식 씨가 자조적으로 본인을 지칭하던 말이다. 아버지에게서 성을 따오는 대신, 어머니의 성인 '밀양 박씨'를 '빌려' 온 것이다. 박근식 씨는 2009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혼혈인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힘썼다. 20대 때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진정서를 품은 채 서울행 열차에서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 간절함이 얼마나 컸을까? 생전 박근식 씨는'한국혼혈인협회' 회장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차별'과 맞서 싸웠다.
박근식 씨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혼혈인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이재갑 작가는 20년이 넘는 작업 끝에 이 전시를 열었다. 이재갑 사진가의 말에 따르면 박근식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자신의 코를 때리곤 했다고 한다. 외모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인'이 아닌 '외지인'으로 평생을 살아야만 했던 그 서러움과 상처의 깊이를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이재갑 작가는 박근식 씨의 투병 사진을 찍는 것을 고집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냈다. 박근식 씨는 사진에 찍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형을 찍는 것이 아니라 혼혈인의 역사를 찍고 있는 것"이라며 그 목소리를 거절했던 자신을 회상하는 사진가의 목소리에는 부채감과 미안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작가와의 만남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멀리 양평에서 박근식 씨의 가족분들이 오셨다. 이재갑 작가는 박근식 씨의 아내 분을 맨 앞자리로 모셨다. 이 전시는 박근식과 그 가족들에게 헌정하는 전시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사모님은 잠시 주저하셨지만 이내 자리에 앉아 관객을 향했다. 전시에 대한 소감을 묻는 말에는 "좋지만 슬프다"라고 하셨다. 박근식 씨의 꿈 중 하나는 마을의 이장이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셨다. 그런데 '외지인'-그는 된장찌개를 가장 좋아하는 한국인이 자명함에도-이라는 이유로 이장이 될 수 없었다고 한다. 사모님은 애써 담담하게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지만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혼혈인의 존재와 아픔에 대해서 무지했던 나를 돌아보며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었다. 맥락 없이 '기지촌 여성과 자녀'로 매도되며 냉담한 시선을 견뎌야 했을 혼혈인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행태가 없어지기를. 아직 한국 사회에 잔존하는 순혈주의가 뿌리 뽑히기를. 6.25 전쟁의 상처로 계속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부당하게 소외받는 사람이 없는 건강한 사회를 우리 함께 만들어 가기를 소망해본다.
Opening hour 11:00~18:00
9.11 - 9.30 ('빌린 박씨' 전시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