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무더위가 날로 치솟던 8월의 한낮. 이열치열이라고 더위의 중심으로 들어가 제대로 즐겨보자며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예매한 싸이의 흠뻑쇼. 공연 당일이 가까워질수록 무더위는 점점 정점을 향해 치솟았고 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그에 못지않게 치솟고 있었다.
사람들의 함성과 온몸을 요동치게 만드는 사운드가 울러퍼지는 공연장.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덕에 한낮의 더위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신나는 노래가 연이어졌고 그 사이에서 나는 내 몸 어딘가에 숨어있던 리듬감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 뒤 어떤 감정이 휘몰아칠지 알지 못한 채.
위에서 짓눌러도 티 낼 수도 없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도 피할 수 없네
무섭네 세상 도망가고 싶네
젠장 그래도 참고 있네 맨날
<아버지.PSY>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들려오는 애달픈 가사들. 즐거움에 방방 뛰던 발을 멈추게 한 가사들. 그 많은 이들 사이에서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멍하니 노래 가사가 띄워지는 전광판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차오르는 눈가의 뜨거움. 왜 그랬을까.
나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어쩌면 무력함과도 같았다. 당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싶으셨겠지만 따라주지 않았던 모든 환경들과 쉽게 드러내지 않았던 속마음. 어린 나에겐 그렇게 보였을 수밖에 없다. 강압적이고 꽉 막혀있는 무기력한 아버지, 무능했던 아버지.
그랬던 젊은 아버지의 나이를 지금의 내가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한없이 높게만, 멀게만 보였던 40대의 어른은 생각만큼 높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있었다. 40대의 난 한없이 어리숙하고 여전히 어리며 모든 것이 두렵다. 나의 아버지 역시 그랬을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몸과 주위의 안쓰러운 시선, 날이 갈수록 커가는 자식들... 뒤돌아서있는 그의 가슴팍엔 어떤 쇳덩이가 자리 잡고 있었을까. 이제서야 젊었지만 무력했던 가장의 앞모습이 궁금해졌다. 두려움에 보지 못했던 그의 얼굴이, 그의 눈동자가 궁금해졌다. 이제서야.
까맸던 그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백발이 되었고 너무 높아 다가서지 못했던 그의 어깨는 한껏 움추려들었다. 다부진 그의 손가락은 내 손가락보다 얇아졌고 한없이 당당했던 발걸음은 급작스러운 병마 앞에 휘청거린다. 왜 그랬을까. 젊었던 당신은. 젊었던 나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다정하지 못했음을 지금에서야 다 갚기라도 할 것처럼 여섯 손녀들에게 한없이 다정한 할아버지가 된 나의 아버지이다. 움추려든 어깨는 자그마한 손녀들을 안아주기에 충분하니까. 이제 더 이상 당신의 뒷모습을 마주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음을 알기에. 이것이 아마 공연장에서 흘렀던 눈물의 의미가 아닐까.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당신을 따라갈래요
<아버지. PSY>
얼굴 가득 깊게 패어버린 주름과 마디마디 굵고 삐뚤어진 손가락을 지닌 나의 아버지. 당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