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내가 이 사람과 미래를 꿈꾸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그 제안을 흘려듣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서울에서의 삶을 계속 살았더라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를 뜻하는 만약. 나의 삶엔 수많은 '만약'이 존재한다. 지금의 상황이 불만족스럽거나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물안개 같은 것. 일어나지 않은 혹은 내가 일으키지 않았던 수많은 선택들. 만약을 꿈꾸는 문장의 끝엔 언제나 말줄임표가 함께한다. 단호한 마침표보다는 말끝을 흐리는 쩜쩜쩜이 어울리는 단어 '만약에'. 왜 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 한 스푼과 아쉬움 두 스푼 그리고 내가 지금 힘에 겹다는 지침 세 스푼이 더해져 휘휘 저어진다. 진회색 같은 알 수 없는 혼합물을 단숨에 삼켜야 하는데 망설여진다. 지나간 선택은 돌이킬 수 없다는 마음속 외침 덕분일까...
만약에 내가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된다면!
만약에 내가 나만의 작은 책방을 열게 된다면!
만약에 내가 기다리던 파리 여행을 가게 된다면!
후회와 미련이 가득 찬 '만약'이 아닌 또 하나의 '만약'.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결국 일어나게 하기 위한 나의 작은 용기라고 하면 될까. 하루에도 수없이 되뇔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 만약이라는 단어는 주문과도 같다. 마치 요술공주 샐리가 샐리 샐리 요술의 주문을 외우고 나면 사랑과 희망이 찾아온다고 노래하는 것처럼. 내가 하고자 하는, 가고자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상상해 본다. 머릿속엔 이미 만약이란 단어 그 이후의 모습으로 바뀐 내가 자리 잡고 있다. 금계국의 샛노란 빛깔의, 백일홍의 붉음을, 탐스러운 수국의 보랏빛으로 가득 찬 나의 주문. 단숨에 들이킨다. 망설임은 1도 없이 벌컥벌컥. 샐리가 전해준 사랑과 희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또 다른 만약을 꺼내어본다. 말줄임표가 아닌 느낌표가 함께하는 나의 꿈들.
만약이라는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지루할지도 때론 아플지도 모른다. 지나간 후회일지라도 다가올 희망일지도 모를 만약은 누구나가 마음 한편에 품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서 오는 그것이라면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지나간 나의 모습을 되짚으며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걸 다시금 상기시키면 된다. 미래에서 오는 만약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거침없이 나아가는 나의 등을 두 손으로 열심히 밀어줄 테니깐. 난 지금처럼 성큼성큼 나아가면 된다.
약간의 후회와 크나큰 희망. 우리가 삶을 살아가기엔 더없이 좋은 친구들이다. 나는 그들의 손을 다시 한번 꽉 쥐어본다. 내일의 나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