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각형의 좁다란 방 한편에 있던 창문을 살짝 열어본다. 좁은 틈 사이로 스멀스멀 바깥의 것들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 소리 하나 없었던 내부의 공간이 어느새 세상의 소리들로 가득 찼다. 자동차들이 내는 엔진 소리, 멀리서 언뜻언뜻 들리는 여러 개의 목소리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까지.
눈에 보이진 않지만 바람도 흔적을 남긴다. 계절을 담은 바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 추억을 담은 바람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잊고 지낸 기억이 되살아나듯 과거를 되살리게 하는 바람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눈앞의 좁은 창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어떤 흔적을 나에게 가져다줄까?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눈에 담기 시작한다. 멀리서 언뜻 봐도 꺄르르 거리며 대화하는 학생들. 나이 든 노모를 모시고 가는 나이 든 자식들. 그들의 목적지를 알진 못하지만 멈춤 없이 앞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내가 모르는 이들이고 그들 역시 나의 눈길이 자신에게 머무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참 묘한 순간이다. 내가 모르는 시선이 나에게 닿아 있다는 그런 미묘한 순간.
또 한 번 불어 들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살짝 흩날린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전해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희미하게 귓가에 들려온다. 시선의 끝에 걸려있는 한 명에겐 그만의 삶이 존재한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지 상상해 본다. 행복한 삶이었을까 혹은 죽지 못해 억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일까. 바람을 타고 온 수만 가지 생각의 갈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타인의 삶을 짐작한다는 건 책을 한 권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겠지.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가는 나와 그들. 우린 각자가 주인공인 책의 어느 페이지까지 써내려 오고 있는 중일까. 창밖의 시선과 불어오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나의 끝없는 생각들. 쉽게 거둬들일 수가 없다. 너무 흥미진진하기에.
온갖 세상의 소리들이 귓가에 들어오기 위해 애쓰지만 되려 점점 희미해져 간다. 바람을 타고 온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선 소란은 전혀 필요치 않기에. 어느새 주위는 침묵으로 가득 찼다. 이야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날의 바람은 기분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조용히 가버렸다. 그렇게 바람이 남긴 흔적들을 조심히 더듬으며 난 남은 시간을 보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다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