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잘 알고 있는가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는가
나는 우리를 잘 알고 있는가
솔직히 모르겠다. 한때는 알고 있다고 착각한 때가 있었다. 매일을 겪어내고 있는 나니깐, 평생의 반을 함께 살아온 우리니깐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소녀였던 엄마는 여군을 꿈꿨다 했다. 청년이었던 아빠의 꿈은 아직까지 알지 못했다. 난 그들의 삶 반토막만 보았을 뿐이다. 솔직히 안다고 생각하는 반토막도 이제는 자신이 없다. 어린 시절 못난 감정들이 그들의 모습 위에 한 꺼풀 장막을 쳐놓았을 수도 있기에.
누군가가 "당신의 부모님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나요?"라고 물어본다면 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음식을 좋아하지, 어떤 색을 좋아하지, 어떤 노래를 좋아하지? 떠오르지 않는다.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한참을 멈춰있다. 난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아는 것이 없다고 확신하는 순간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진다.
어떤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 자신의 아버지를 인터뷰하게 되었다는 부분. 첫 번째 시간은 허둥지둥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 인터뷰 시간이 왔고 시간에 맞춰 만난 아버지는 처음과 달리 정장을 입은 채로 나오셨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들려주기 위해, 당신이 세상에 남겨놓은 존재를 앞에 두고 당신의 삶에 대해 말하기 위해 가장 멋진 옷으로 입고 나오셨을 아버지. 너무나도 멋진 장면이지 않은가. 알고자 하는 마음이 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나 역시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의 어머니,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싶다. 우연을 가장해 뜬금없이 "꿈이 뭐였어?"라며 묻는 것 말고, 그들만을 위한 시간을 내어 그들의 삶을 알고 싶다. 엄마, 아빠가 아닌 이우희, 김영남으로서의 삶 말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착각의 늪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한 발이 진흙더미에 빠졌다면 쉬이 나올 수 없다. 버둥대다 나머지 한 발도 진흙 속에 갇혀 버린다. 당신에 대해 알고 있다 자부하며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기준에 맞추려 하기만을 반복한다면 늪에 빠져버린 두 다리와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아니다. 나는 그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알고자 하는 마음이 가을밤 풀벌레 소리 따라 찌르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 글을 완벽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완벽한 착각이었다. 나는 나를 아직 잘 모름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