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발머리 소녀에게

by 스누즈



9시다. 뉴스에서는 2026년 수능 출제경향에 대해 나오고 있다. 지금쯤 수험생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지의 첫 페이지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12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평가 아닌 평가를 받게 되는 오늘 하루. 전국의 수많은 아이들과 수험생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 얼마나 긴장될지, 얼마나 떨릴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 나이가 42살이니 23년 전 즈음 수능시험을 보았다. 2002년 11월의 겨울 어느 날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시험 성적이 중요치 않은 상황이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지 않았나 싶다. 여느 날과 비슷한 하루로 기억됐을 나의 수능날. 지나간 기억은 뒤로하고 이제 앞으로 올 수능에 관한 기억은 어디쯤일까. 14살의 딸을 두고 있으니 아마 5년 뒤쯤이면 수능에 대한 새로운 기억이 새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눈앞에 시험지를 두고 있는 것과 추운 날 시험장 안으로 아이를 뒤에서 지켜보는 것 어느 것이 더 마음을 힘들게 할까.



기말고사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 큰아이는 요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너무 받고 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찾아오는 감정의 변화에 힘들어하고 공부를 하기 싫은 마음과 해야만 하는 두 가지 마음의 충돌을 겪고 있는 듯하다. 포기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가 오롯이 견뎌야 하는, 내가 도와줄 수 없는 혼자만의 시간인 것이다.


"엄마,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어. 어른이 돼서 이차방정식이 필요하지 않잖아. 그냥 학생을 관두면 안 될까?"


14살이라면 필수인 물음들을 토해낸다. 답도 없는 투정이 답답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엄마이고 학생이란 자리를 네 멋대로 관둘 순 없으니 그저 달래주는 수밖에 없다. 짜증 내는 아이를 품으로 끌어당기고 비단결 같은 검은 머리칼을 쓸어준다. 아프다고 하는 어깨를 조물조물 주물러준다.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주기도 한다. 이것으로 딸아이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달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아림아, 아직은 모르겠지만 지금 다가오는 시험 네 삶에 엄청나게 중요한 건 아냐. 못 견디게 스트레스받을 만큼 중요한 게 아니야. 힘들 땐 그냥 자버려도 돼.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그냥 가을이니깐 단풍잎 한번 바라보는 게 엄마는 더 좋다고 생각해."


힐끗 창밖의 단풍을 보더니 '마지막 잎새'에 나올법한 나무 같다고 대답한다. 많은 위로가 되진 않았음이 느껴지지만 엄마 마음을 전했으니 덜 힘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중학교 1학년 기말고사 시험이 수능에 비할 수 없겠지만 딸아이에겐 수능과도 같은 무게로 느껴지겠지. 마음대로 되진 않겠지만 마음을 가볍게 먹었으면 한다. 지금 잘하고 있으니 계속 이렇게 너의 길을 가면 되는 거라고, 너무 조급해하지도 그렇다고 쳐지지도 말라고. 하다 보면 너만의 방향을 꼭 찾을 것이라고 온몸을 뒤틀고 있는 단발머리 소녀를 바라보며 속삭인다.


글을 쓰는 사이 하루가 저물었다. 단지 내의 창으로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고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갈 것이다. 긴장했던 어깨의 힘이 풀어지는 저녁이 되었으면 한다. 후회 없노라고 시원한 웃음을 보일 수 있는 저녁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은 수험생뿐 아니라 모든 이가 빠짐없이 따뜻한 겨울밤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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