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뜨개 목도리 두른 12월

by 스누즈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만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서 와야 했던 귀갓길. 한층 매서워진 바람을 피하려 어둡고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버스 안에 가득 차버렸다. 그 안엔 나도 있었다. 서있으면서 내려다보니 사람들의 까만 뒤통수만 보인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집으로 향하는 뒤통수마다 있을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그들이 살고 있을 인생의 한 장면을 맘대로 상상해 보기도 한다. 지루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잠깐 차가웠던 버스 안의 공기가 후끈해진다. 저마다 내뱉는 숨이 모였다. 여름의 얇은 티셔츠와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떠오른다. 버스 안의 공기는 내가 입은 외투와 어울리지 않았다. 모두가 입은 두꺼운 외투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건조하고 답답한 버스 안의 열기로 겨울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와버린 걸 알게 되었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 가까워지고 있다. 달력이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놓았다. 11장의 달력을 넘기는 동안 난 무엇을 하며 지내왔을까. 소소하게 살아가려 했던 나였다. 매일 똑같았던 하루를 똑같지 않게 보려고 했던 나였다. 네 번의 계절을 좀 더 가까이 느끼고 나의 제철을 챙겨보려 했다. 그리고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열한 번째 페이지의 끝조각에 와 있는 지금, 난 어떠할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후회 없이 살았던 열한 장이었던 것 같다. 초록과 싱그러움의 이파리들로 한 장 한 장 나의 하루를 채웠었다. 가끔 비가 내리고 폭풍이 부는 날도 있었지만 기다리면 비는 그쳤다. 분홍빛의 꽃으로 가득 찬 날과 눈부시게 화창했던 하루도 있었다. 비가 오면 온몸이 흠뻑 젖도록 서 있었고 무지개가 뜨면 원 없이 바라보기만 했었던 나의 지난 계절들. 하루하루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했던 나의 수많은 하루들.

겨울이 오면 예쁜 뜨개 목도리를 두른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해충 방지와 손상 방지를 목적으로 두른 목도리이지만 오색빛깔 뜨개를 보면 목적과는 별개로 귀엽게만 느껴진다. 12월은 그런 것 같다. 한 해 동안 싱그러웠을 초록 잎들을 다 보내버리고 가지만 남은 나무에 목도리를 둘러주며 하는 얘기 같은. 넌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그러니 매서운 겨울바람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11장의 페이지를 넘기느라 지쳤을 수도 있다. 내가 만들어 놓은 계획대로 살기 위해 조금은 무리했을 수도 있다. 그런 나에게 숨 돌릴 수 있는 틈을 주는 12월. 너무 기다렸던 크리스마스이브가 있고, 겨울과 찰떡인 재즈도 있고, 보일러를 빵빵하게 돌려 따뜻한 거실 바닥도 있으니 말이다. 한 해를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둘러주는 최고의 목도리로 가득 채워진 연말. 이러니 살을 애는 찬바람이 불어도 미워할 수가 없다.

이제 곧 달력의 11번째 페이지를 뜯을 것이다. 달력의 두께는 제일 얇아졌지만 어떤 달보다 제일 따뜻할 12월, 다가올 나의 연말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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