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오늘이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시간의 굴레 속 오늘이란 단어. '어제'와 '내일'과 함께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실체는 '오늘'뿐이다. 우리는 오늘만을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확실해지는 생각 하나는 과거와 미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 지나간 옛 시절은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다가온다. 바람을 타고 음악을 타고, 때론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따라. 마음이 애잔해지고 어쩔 땐 슬퍼지기까지 한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감정으로 하루 온종일 오늘을 살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난 오늘이란 시간 위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다름없었던.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먹먹함으로 빛나는 오늘의 색을 보지 못한 채 회색빛으로 물들였던 시간들. 누구나가 있었을법한 그런 날들이다. 이랬던 내가 지나간 시간들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로 인해 지금 서있는 시간을, 순간을 놓치는 건 멍청한 일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잠결을 헤매다 스며들어오는 새벽빛을 알림 삼아 오늘을 맞이했다. 12월의 첫날인 오늘. 무엇이 달라질까? 11월의 마지막이었던 어제와 다른 무언가가 나에게 있을까? 똑같은 아침 풍경 속에 아이들과 나. 외출 준비를 마친 뒤 밖으로 나서본다. 12월답지 않게 꽤 포근한 온도다. 겨울에 첫 발을 내디뎠음에도 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드는 오늘이다. 주위의 소음을 물리치려 이어폰을 귀에 꽂아본다. 오늘의 기분에 맞춘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된다. 내 귓가에만 울리는 BGM을 들으며 눈앞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순간 기분이 좋아진다.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 이제껏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한 채~" 사랑을 말하는 귀여운 노랫말에 괜히 웃음이 삐져나온다. 노래란 건 참 신기하구나 사람 마음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구나란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바삐 움직여본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다다랐다. 지하도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겨울 특유의 차가운 듯 차갑지 않은 푸른빛을 지닌. 크게 숨을 몰아쉬니 시원한 공기가 가득 찬다. 괜스레 행복해진다. 정말 별것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 오늘 아침이었다.
두어 달 갈팡질팡하며 걸어왔던 나에게 오늘 아침은 분명함을 보여줬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맞이하면 된다고, 별거 아닌 작은 것들을 바라보며 소소하게 미소 지으면 된다고. 그래 그러면 되는 거였다. 알고 있었지만 그간 와닿지 않았던 마음이었는데 오늘에서야 길었던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 든다. 그 계기가 파란 하늘이었든 거리에 가득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든 상관없다. 달라진 마음가짐만이 중요할 뿐. 몇 시간이 지나면 열심히 살아왔던 오늘이 지나버리고 과거의 서랍 속 어제가 될 것이다. 아쉬워하지 말자. 우리에겐 또다시 시작되는 오늘이 있을 테니까. 오늘부터 온전히 오늘만을 아끼며 바라볼 테다. 이 마음이 흐릿해질 때면 12월 첫날 하늘을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것이다. 파랗고 차가운 하늘. 이젠 앞으로 나에게 올 수많은 '오늘'을 기다리며 어두워져 가는 나의 '오늘'을 반짝거리게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오늘은 그 어떤 날보다 빛을 내며 서랍 속에 보관될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