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헤매고, 달은 지구의 주위를 헤맨다.
지구는 태양의 범주에 속해있고, 달은 지구의 범주에 속해있다.
지구는 태양을 바라보고, 달은 지구를 바라본다.
지구는 참, 피곤할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나'를 잊지 않으려 애쓰며 살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나의 삶이, 나의 하루가, 나의 매일이 언제나 새롭진 않겠지만 끊어지지 않도록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나만이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별자리들이 있기에.
요즘 나만을 위해 돌아가던 일상이 조금 틀어졌다.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태양과 가까워졌다. 아니, 서로가 서로를 향해 기울었다. 지구의 축이 틀어지니 달의 축도 바뀌었다. 세 개의 동그라미가 약간씩 삐뚤어진 채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중심축이 흔들리려 할 때마다 내가 '나'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글'이다. 나는 글을 읽고 글을 보고 글을 쓴다. 글로부터 위안을 받는다. 위로를 받는다. 글에게 다짐을 한다. 약속을 한다. 그리고 글에게 지친 마음을 털어놓는다. 기울어진 지구는 글의 도움을 받아 넘어지지 않고 회전한다. 내가 풀어놓는 글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끄집어낸 이야기라 매끄럽지도, 예쁘지도 않다. 약간의 투정과 약간의 피로감이 나의 글엔 자주 보인다. 그저 내 마음 편하라고 글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쓰는' 행위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쏟아내던 나의 글이 요즘 못나 보인다. 머릿속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손끝에선 실타래가 엉키듯 얽혀버린 문장들이 곧게 나오지 못하고 있다. 손은 움직이나 정신은 딴 곳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가수면의 상태처럼 몽롱하다. 하얀 화면의 까만 글자들이 진흙탕 속을 헤매고 있다. 블랙홀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태양을 향해 기울었던 지구는 제 모습을 받아들인 듯했지만 한 번씩 울컥 올라오는 원래의 궤도에 대한 그리움과 벗어난 궤도에 대한 억울함은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마음이 어지러우니 글도 당연히 어지러울 수밖에.
이것 또한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걸까? 잠깐의 시간이 지나가면 지구는 벗어난 궤도를 또 열심히 돌며 살아가겠지. 태양과 지구 그리고 달이 자신의 회전을 유지한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봤던 그 하루들이 오래된 옛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 서글프다. 오늘도 지구는 복잡한 마음을 글로 풀어내고 글은 어제보다 한층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