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아 부탁해

by 스누즈




네 개의 계절 중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내 생애 여름의 첫 기억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국민학교 때였을까? 아니면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시기였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어느 해였다. 오래달리기로 시험을 대신했었던 그때, 친구들과 한참을 달린 기억 속 그날. 어떻게 달렸는지 얼마만큼을 달렸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터질 듯이 빨개진 얼굴과 빠질 거 같은 통증이 온 치아. 오래달리기는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진짜 여름에 달렸던 것인지도 확실하진 않지만 어째서인지 내가 가진 '여름'의 첫 기억이다.




유난히 빨개지는 얼굴의 아이. 단순히 빨개지는 것이 아니라 검붉어지는, 내 얼굴에 붉은빛의 단풍이 얼룩덜룩 피어난 것 같은. 아마 피부색이 하얬다면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타오르는 불볕 땡볕과 함께 내 얼굴도 타오르는 계절. 그래서 고통스러운 계절 여름.




징글맞은 여름이란 계절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차가운 캔 맥주 하나와 감자튀김뿐이다. 막 냉동실에서 꺼내온 것같이 살얼음이 살캉 얼어있는, 더운 열기에 바짝 마른 입으로 들이키는 첫 모금의 짜릿함. 안주로는 갓 튀긴 감자튀김이 있다. 투명한 노란빛의 기름으로 차르르 튀긴 감자. 갓 튀겨 나온 감자는 영롱하다. 말 그대로 때깔이 곱다. 뜨거워서 손으로 집기도 힘들지만, 입안이 데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유혹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빨간 케찹을 듬뿍 찍어 와앙 한 입에 먹어버린다. 한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한낮의 더위는 사라져버린다. 불볕더위는 이 한 잔을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한 캔을 게 눈 감추듯 벌컥벌컥 마셔버리고 어느새 두 번째 캔을 따버린다. 딸깍. 여름을 즐기기엔 두 캔이면 충분하다. 온몸에 담겨 온 열기를 지우기엔 단 두 캔이면 된다. 바삭바삭 감자튀김과 캔맥주. 이 얼마나 행복한 조합인가. 이때만큼은 어른이 된 것이 슬프지만은 않다. 콜라의 탄산으로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짜릿한 청량감. 민증을 소지하고 있는 어른이기에 정당하게 맛볼 수 있는.




오늘의 햇볕도 따가웠다. 아마 하루하루 갈수록 더위는 정점을 향해 갈 것이다. 여름 작물들은 타오르는 햇볕을 듬뿍 먹고 무럭무럭 커갈 것이다. 초록 토마토는 내 얼굴처럼 새빨개질 것이고 옥수수의 키는 하늘을 향해 쑥쑥 뻗어갈 것이다. 제철을 모으고 있는 여름의 작물들과 하루하루 익어갈 내 얼굴. 둘 다 여름 속에 있다. 여름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싫어하는 것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이라니 피식 웃음이 삐져나온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것이라 했지만 온전히 즐기기엔 6월 말의 이른 햇볕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이제 슬슬 냉장고의 한 칸을 초록과 파란빛으로 물들일 때가 다가오고 있다. 여전히 여름은 싫지만 여전히 여름을 살아내야 한다. 여름은 원래 더운 계절이니깐 여름이란 놈은 제 할 일을 충실히 할 뿐이니깐. 그저 올여름도 잘 익어가길 바랄 뿐이다. 여름 작물과 활활 타오를 내 얼굴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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