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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Dec 14. 2015

아이들에게 나중이란 없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다시 출발이다.


가는 동안

아이들에게 

오늘은 저녁을 먹어야 하니

용돈을 아껴 써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대부분 용돈을 만원씩 가져왔는데

휴게소 음식이 비싼 편이니

적어도 6000원은 남겨두라고

신신당부했다.


3시간을 달려 드디어 부여에 도착.

점심을 먹고 나서 제일 먼저 들린 곳은? 

국립부여박물관이다.


백제금동대향로라는 

대단한 유물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작년에 왔을 땐 내부 공사 중이었는데

오늘 가보니 말끔하게 새단장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을 다 둘러보고

나오다가 기념품 가게에 들렸다.

아이들 눈치를 보니 다들 영혼이 팔렸다.

기념품의 유혹에 넋은 잃은 아이들 상태를

진단해보니 회복하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것 같다.


나는 박물관 의자에 앉아서 

유혹에 빠진 아이들을

사진기로 찍고 있었다.

그러다 한 남자 아이가 눈에 띄었다.


뭔가를 들고 한참을 고민한다.

손에 든 걸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 다음

옆에 친구에게 어떻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뭔가 큰 결심을 한 듯한 표정으로

계산대로 향한다. 손에 만원짜리 한장을 쥔 채로.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우유부단한 녀석이군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녀석은 승부사였다.

무모한 승부사.



만원을 내더니 잔돈도 받지 않고 화장실로 향한다.

나도 화장실로 볼일을 보러 갔다.

그 녀석은 백제 배 모형을 조립하는 세트를 들고 있었다.

그 녀석에게 말했다.


"기념품 멋있는 거 샀네~"

"예~ 멋있죠~ 쌤~"

"근데 잔돈 받았어?"

"아차~~"


나는 그렇게 뛰어나간 녀석이 잔돈을 받으러 간 줄 알았다.

후에 밝혀진 이야기지만 그 녀석은 그 때 기념품 담을 비닐 봉지를 받으러 갔었단다.


박물관을 나와 차에 타고 출발한 후 10분쯤.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엿들어보니

아까 그 녀석이 산 기념품이 만원짜리라고 한다.


헐. 뭐지? 그럼 기념품 사는데 용돈을 올인했단 말인가?

저녁은 어쩔 셈이냐고 물어보니

그냥 피식 웃는다.

대책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책없이 다음 여행지인 정림사지를 둘러봤고

마지막 여행지인 부소산성과 낙화암으로 향했다.


이번엔 다른 남자 아이가 또 한번의 무모함을 보여줬다.

이 아이는 아침에 올 때부터 다른 한쪽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놀다가 발목 주변의 뼈가 부러졌단다.

괜찮냐고 하니까 다친지 2주나 지나서 괜찮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안 괜찮아 보였다.

이전 여행지인 정림사지에서부터

걸을 때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낙화암과 부소산성은 산에 올라가야 하는 코스다.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다친 다리를 이끌고 쉽게 올라갈 정도로 만만한 코스도 아니다.

그래서 그 녀석에게 밑에서 쉬고 있으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막강한 고집을 부렸다.


"갈 수 있어요~ 봐요~ 멀쩡하잖아요~~"



그러면서 저쪽으로 달려가는데..  뒤뚱거린다.. 거참..

멀쩡하다면서 멀쩡하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니 괴롭다.


"너 무리하다 심해지면 병원 또 가야 돼"

"괜찮아요~~ 싸나이가 이 정도는 해내야죠"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자기만 끝까지 못 해내는 게 싫은가 보다.

오기를 갖고 꿋꿋하게 부소산성 정상으로 향한다. 낑낑대면서 올라간다.

군대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이렇게까지 하게 됐다.

정상에 올랐다. 대단하다고 박수 쳐 줬다.

내려오고 나서도 다행히 괜찮아 보였다.

아이들하고 멀쩡히 잘 논다.


다리 다친 이 녀석과 용돈을 올인한 그 전 녀석.


이 두 녀석이 처한 상황이나 맥락은 다르지만

그들에게 나중이란 없었다.

지금 당장 사야하고

지금 당장 해내야 하는 것이다.


돈을 한 번에 다 써버리고 

붕대 감은 다리로 무리하는 게

잘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아이들은 왜 그렇게

미래보다는 현재에 더 관심을 

가지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그냥 아이들이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관심을 두는 게 무엇인지

잘 알아두면 아이를 이해하는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린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나중에 커서 어쩔려고 그러니?'

'너 그러다 나중에 고생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 한다고 

아이가 순순히 나중을 대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시켜서 하게 되지만 그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아이가 자기 스스로의 삶에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때가 되어야 한다.

그 때가 되면 스스로 나중을 대비할 것이고 

스스로 자기 삶의 맥락을 가지게 될 것이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어른과 현재를 고집하는 아이.

이 둘의 싸움에서 아직까지 완전한 해답은 없어보인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해답의 실마리가 조금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나중이란 없다.



* 올인한 그 전 녀석은 아이들이 먹는 저녁을 빈 그릇에 조금씩 얻어서 한 그릇을 만들어 해결했습니다. 

   역시 무모한 승부사가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 요령과 잔머리는 필요하겠죠? 이것도 능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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