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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Dec 13. 2015

놀아야 산다

매서운 추위 뒤에

눈과 비를 마구 뿌리더니

오늘은 잠시 포근해졌다.

아침 저녁으로는 역시 춥지만서도.


이번 주도 변함없이 아이들과 여행을 간다.

여행지는 부여. 백제의 최후에 대해 알아보러 출발.

하.지.만. 아이들은 백제 따위에 관심이 없다.

백제의 최후보다는 지금 당장 뭐하고 놀지가 더 큰 관심사다.



한 여자 아이가 아빠의 USB를 갖고 와

카오디오에 꽂아 최신가요를 재생한다.


최신가요랍시고 고른 첫 노래가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라니..

애들아 이건 최신이라고 하기엔

지나도 한참 지난 것 아니니 하고

잠시 딴지를 걸어봤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부른다.

나도 좋아하는 노래라

이내 흥얼거린다.


그 뒤론 '스물셋', '취향저격'

같은 최신가요다운 노래가 나왔는데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던

여자친구(걸그룹 이름)의 '유리구슬'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이 아빠가 노래를 잘못 다운 받아서

가사 없이 반주만 나오는 노래를 다운 받은 것이다.

분노한 아이들은 USB를 준비한 아이에게

항의했고 그 아이는 아빠를 탓하며 몹시 분하게 여겼다.

가사가 없으니 따라 부를 수 없었다.

서둘러 같은 가수의 '오늘부터 우리는'으로

넘어갔는데 다행이 이 곡은 가사가 있는 노래여서

흥겨운 분위기를 겨우 되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가사 없는 노래를 준비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항의를 받았던 여자 아이가

남자 아이들과 열심히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남자 아이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다른 여자 아이들이 우는 아이를 달래주었는데

우는 아이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온다.


"엉엉~ 학교에서 ###(학교 친구 이름)가 날 왕따시켰어~"

"내가 애들하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가 뒤에서 애들한테 귓속말하고~~"


헐. 이게 무슨 소린가.

남자 애들과 다투다 울더니

갑자기 학교에서 따돌림 당했던 사연을 고백한다.



그렇게 줄줄이 이어지던 그 아이의 고백은

수많은 에피소드를 거쳐 인간관계는 힘들다는

이 말 한마디로 마무리가 되었다.


"역시 공부가 제일 쉬워~ 공부는 누구 신경 안쓰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잖아~ 흑흑"


나를 포함하여 다른 아이들 모두

태어나 이렇게 공감 안가는 이야기는 처음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한번의 폭풍이 지나고

또 몇 차례 남자와 여자의 다툼이 있은 후

휴게소에 도착했다.

요즘 보기 드물게 놀이터가 있는 휴게소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과감하게(?)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을 듬뿍 줬다.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간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놀았다.


실컷 놀다 온 아이들은 표정이 달라져 있었고

가는 동안 차에서도 큰 다툼 없이 재미있게 놀았다.

물론 울다 고백했던 그 여자아이까지도.


여러 차례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느낀 바가 있다.

그건 바로 충분히 놀아야 아이들이 안정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다툼은 때론 불안감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이런 불안감은 몸을 움직여 열심히 뛰어 놀아야 없어진다.

땀 흘리며 놀고 소리도 지르면서 에너지를 충분히 써야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답답한 마음도 풀어진다.


어린이 놀이 운동가 편해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문제는 놀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부모는 아이들이 평생 쓸 몸을 가꿔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모두 다 뇌에 미쳐 머리가 좋아진다면 뭐든지 하는 어른들을 볼 때 소름이 돋는다”

“아이들에게 결핍된 것은 주의력이 아니라 놀이다. 오늘 한 그릇의 놀이 밥을 먹이자”


난 그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브런치라면 라이킷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아이들은 놀아야 산다.


일기가 너무 길어졌다.

뒷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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