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바쁘다.
출근 길에 아내를 지하철 역에 데려다 줘야하고 같이 일하는 형을 태워 사무실로 향해야 한다. 차를 타고 열심히 달려 아내를 내려줬다. 같이 일하는 형을 만나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실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하고 출근해 일을 시작한다. 아이들과 배낭여행을 하느라 오랫동안 사무실을 비워두었다. 거의 1달만에 찾은 사무실이다. 일을 시작한지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배에 신호가 온다. 화장실에 갔더니 변기에 물이 얼어 있다. 우리 사무실 환경이 좀 열악하긴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물이 저장된 부분까지 얼어서 볼 일을 볼 수 없는 지경이다. 배에 신호가 좀 더 강하고 오고 나는 다급해졌다. 급한대로 사무실 구석에 있던 버너를 꺼내 물을 끓였다. 물 끓는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끓는 물을 변기에 부었다. 역시 한번에 녹진 않는다. 두 번째 물을 끓일 때 배에서 격한 비상 신호가 왔다. 왠지 이러다 큰일 날 것 같다. 사무실을 뛰쳐나가 주변 상가를 찾아 헤맸다.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백화점으로 돌진했다. 친절한 직원이 웃으며 나에게 말한다.
직원의 뒷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다시 나와 다른 상가를 찾아본다. 역시 급하니까 스캔 능력이 2배쯤 향상되는 것 같다. 평소 관심도 없던 대형마트 건물 1층에 화장실이라는 표지판이 별처럼 빛난다. 감격스러운 얼굴로 들어갔지만 이런 젠장. 휴지가 없다. 그 큰 마트에서 휴지를 찾아 계산하고 다시 올 엄두가 안 난다. 결국 다른 상가를 찾아 나선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간 곳은 대형 사우나 건물. 3층에 올라가니 이젠 정말 응급 상황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휴지가 있다. 두 손으로 휴지 걸이의 휴지를 마구 돌려 주머니에 넣었다. 노크 할 생각도 없이 문을 열었다. 누가 있다. 어색한 인사와 다급한 문 닫힘을 경험하고 다음 칸을 열어 들어가 앉았다. 이 순간.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황홀한 순간을 경험하고 마음이 안정된 후 옆 칸에 있던 아저씨께 사과를 했다.
대답 대신 목청 가다듬는 소리만 돌아왔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아저씨가 먼저 화장실을 떠났다.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좀 보다가 나도 볼일 마치고 나왔다. 세상이 달라 보인다. 이렇게 평화로울수가. 아무튼 그렇게 급한 일을 처리하고 돌아오니 같이 일하던 형이 물을 끓이고 있다. 그 형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끓는 물을 변기에 연거푸 부은 후 나와 함께 몇 가지 작업(?)을 통해 얼음을 다 녹였다. 물 내려가는 걸 확인하고는 그 형이 화장실 문을 쾅하고 닫는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 형도 평화를 되찾았다. 서로 얼마나 행복한지를 공감하고는 앞으로 이런 화장실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 때 휴대폰으로 문자가 한 통 왔다.
오늘 아침에 주차할 때 켰던 비상등을 안 끄고 그냥 왔는가보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그걸 발견하고는 나에게 문자로 연락을 준 것이다. 너무 고마웠다. 고맙다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라고 답장을 보내고 차로 갔다. 내 차는 여전히 호들갑스럽게 비상등을 깜빡이고 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 내 차가 주인의 다급함을 알아서 스스로 비상등을 켜진 않았을 것이다. 깜빡하고 내린 내 정신을 탓하며 비상등을 끄고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까지 가는 동안 나도 누군가의 차에 미등이나 비상등이 켜져 있다면 연락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주변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살핀다. 고마운 도움을 받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긴다. 서로 돕고 사는 게 세상 아닌가 싶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문자로 알려준 작은 사실 하나가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일상이 화장실을 찾아헤매던 나처럼 그렇게 다급하면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좌충우돌할 수 밖에 없다. 바쁘게 사는 게 좋은 일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너무 여유를 잃고 살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친절한 백화점 직원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못하고, 휴지가 없어 절망에 빠지고, 사람 있는 화장실 문을 벌컥 열지도 모른다. 마음이 다급하면 달리지도 않는데 가만히 서서 비상등을 깜빡이는 차처럼 호들갑을 떨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오직 나만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 반대로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차가 아무도 없는데 비상등만 깜빡이고 있는 걸 지나치지 않고 알려주면서 산다. 그 사람도 어딘가로 가던 중이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아주 바빴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실제 생활의 바쁨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가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비상등이 깜빡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