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첫 마음

by 서효봉

조금 다른 글이다. 이건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다. 쓰고 싶은 만큼 쓰고 싶다. 이 마음이 이 글의 시작이다. 쓴다는 것은 나를 흥분되게 만들지만 그 막막함은 숨이 막힌다. 쓴다는 행위는 멋지지만 쓸 수밖에 없는 당위는 고통스럽다. 누군가에게 내보이는 게 아니라 그저 쓰고 싶다는 욕망 아래 기록된 글이길 바란다.


지금 여기를 살고 있다. 2016년을 살고 3월 하고도 11일에 어느 도서관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살아 있으니 이 짓을 하고 있다. 살아 있는데 구체성이 없다. 머릿속에 생각들만 춤추고 있을 때 난 가장 쓸거리가 없다. 그럴 때 난 ‘오늘 저녁엔 뭐 해 먹노?’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날마다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건 막막한 일이다. 그 때는 냉장고를 부탁할 사람도 백주부도 없던 때다. 엄마는 홀쭉한 지갑을 들고 영선시장으로 간다. 시장 간다는 소리가 난 참 좋았다. 걸어서 30분쯤 걸리는 그 거리를 엄마 따라 가면 수많은 구체성들이 나를 기다린다. 당골 슈퍼를 지나고 미군아파트를 지나고 바스락거리는 플라타너스 거리를 한참 걷다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나면 시장이다. 큰 눈으로 날 노려보는 생선과 머리 없는 살색 닭들이 어느 절 사천왕마냥 맞이한다. 겁이 나 엄마의 옷깃을 잡으면 색색이 진열된 떡과 달작 지근 향 나는 과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다음엔 잡동사니들과 이름 모를 풀들이 한 무더기씩 자리를 차지한 채 부대끼고 있다. 너무 구체적이라 정신이 없을 때쯤이면 드디어 닭발 앞에 도착한다. 엄마는 시장에 올 때면 그 닭발을 사주곤 했다. 1개 100원. 양념 묻은 닭발. 나란히 줄지어 있다. 호일로 싸서 먹기 좋게 대령이요. 매콤한 양념과 약간의 껍질을 발라먹고 나면 그야말로 발만 남는다. 윤기 있는 진갈색 발을 사탕처럼 빨다보면 하얀 발 뼈가 된다. 그 발마저 물렁뼈라 씹어 먹는다. 이 닭발이야말로 구체성의 정점이다. 100원짜리 구체성은 꽤나 인상적이고, 거길 반환점으로 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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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구체성은 영선시장에 있다. 나이 서른다섯. 그 시장에 간 지 25년이 지났다. 공원을 산책하다 운동기구에 잠시 앉아 용을 썼다. 밀고 당기길 17번 하니 밤하늘이 보인다. 별이다. 신경 쓰인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공원에 홀로 앉아 용 쓰다 별을 보라. 난 무엇을 하며 살아왔던가? 내용 없는 삶의 청구서가 날아왔다. 무엇을 위해 밥 먹고 잠자고 싸돌아다녔는가? 물어도 대답이 없다. 적막감에 내가 웃는다. 웃어 봐도 별 도리 없다. 내 삶의 구체성은 저 별과 나 사이만큼 멀어져 있다. 별은 항상 저기 저렇게 있었지만 25년 동안 난 용만 썼다. 뭐하는지 모르고, 뭐라는지 모르고 그저 휩쓸려 떠내려 왔다. 진흙투성이 난민이 되어 별을 바라본다. 별은 그저 별일뿐이고 난 그저 사람이지만 난 알아야겠다. 난 누구이며, 왜 살고 있고, 내 삶의 내용이란 무엇인지.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어쩌란 말이 아니다. 난 글을 쓸 뿐이고 그 글이 영선시장 닭발만큼 구체성의 정점이 되길 기원하고 있다. 그렇게 쓰고 다듬고 고치면서 텅 빈 25년을 채워보고 싶다. 저 별과 나의 간격이 가까워지고 우리의 만남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당신에게도 이 일을 권하리라.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밤에도 별은 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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