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게으른 문짝을 두드리며 누가 왔다. ‘누구세요?’하고 외치니 통장이란다. 통장? 잠이 덜 깬 몸을 비틀거리며 문을 연다. 사람 좋게 생긴 (그러니까 얼굴이 크고 게다가 넓고 더불어 배가 나왔다는 말일지도) 통장 아저씨의 짧은 인사. 그 아저씨가 나를 아저씨라 호명한다. 사람 좋다는 말은 취소다. 다짜고짜 모나미 볼펜을 손에 쥐어주며 사인하란다. 뭔가에 홀린 듯 사인하는데 볼펜이 나오다 만다. ‘안 나오는데요?’했더니 그냥 됐단다. 뭐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눈 몇 번 껌벅이는 사이 통장 아저씨는 사라졌다. 이거 꿈인가 싶지만 내 손엔 통지서가 하나 쥐어져 있다. 그 위로 아홉 글자. 교육훈련소집통지서. 아. 민방위훈련?
지극히 평범한 육군 최후방(전방이 아니다) 부대에 배치를 받고 2년 2개월을 뺑이 쳤다. 걱정 마시라. 끝도 없고 답도 없다는 군대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군 생활을 마쳤다는 말. 대부분의 병사들처럼 국방부 시계만 노려보다 전역이란 걸 했고 예비군을 거쳐 오늘날 민방위대원이 되어 통지서를 받았다.
‘위이이잉~~’하는 소리가 고막을 울리기 시작하면 밖에 나갈 수 없었다. 도시 전체가 잠시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날 아침 아버지가 ‘민방우 간다~’고 집을 나섰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배웅했다. 난 그 때 민방위훈련이란 게 뭔지 몰랐지만, 아버지가 그 훈련이란 걸 하기 위해 나갔고, 살벌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이 겹쳐졌다. 난 아버지를 걱정했다. 어딘가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요망한 생각까지 했다. 걱정을 떨치려고 TV를 크게 틀어놓고 만화에 코를 박았다. 사이렌 소리가 끝나면 뭔지 모를 허무함에 힘이 다 빠졌다. 아버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집에 돌아왔고, 엄마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저녁을 차렸다. 나도 별일 없다는 듯 저녁밥을 우물거렸지만 가끔 꿈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전쟁이 나기도 했다. 그 후로 ‘위이이잉~~’하는 소리는 날 계속 불안하게 했다.
교육장은 차를 타고 20분쯤 걸리는 곳에 있다. 가는 차에서 오랜만에 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내 동생은 지금 일하는 곳을 그만둘지 아니면 계속 다닐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거기서 오랜 시간 일을 했다는 직장 상사와 이야기 할 때마다 전망이 없다는 걸 느낀다고 한다. 14년이나 일해도 월급은 별 차이가 없고 하는 일도 비슷하단다. 누구한테 인정받기도 힘들고, 성에 차지 않는 일. 난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 몇 마디를 해주었지만, 동생의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젊은 피의 불안감은 동생의 어깨를 적셨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게 했다. 고개 숙이게 했다.
4시간 정도 진행되면서 3~4명의 강사가 나왔고 불안한 현 국제정세, 이에 대비한 우리의 안보태세 같은 걸 설명했다. 화학 무기, 핵무기가 터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물론 우리의 대원들은 대부분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 세계를 누비며 통신 훈련 중이거나, 게임으로 전투력을 갈고 닦는 중이다. 국가의 불안감이 개인의 불안감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마음에 드는 상황이지만 어째 시간이 아깝다. 좀 더 멋지게 훈련할 순 없을까? 차라리 다 같이 스마트폰으로 뭔가 해보며 조직력을 기르거나, 대원들끼리 알아가는 재미라도 느끼면 좋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지만 아저씨들은 국가의 불안감을 무관심이라는 방패로 반사시킬 뿐이다. 누가 뭐라고 한마디 했다간 ‘나 살기 바쁜데 어쩌란 말인가? 나라가 해 준 게 뭔데?’하는 성난 사자후를 경험할지도.
문자가 왔다. 엄마가 퇴원한다고 했다. 엄마는 1달 전부터 감기에 시달렸다. 아주 강력한 감기인 줄 알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감기약을 타서 먹었다. 감기는 1주일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아야 하거늘 엄마의 감기는 낫지 않았다. 나이 탓일까. 열도 나지 않고 두통도 없었지만 계속 기침이 났다. 기침의 장기화는 엄마를 불안하게 했다. 나도 불안했다. 몇 주가 지나도 낫지 않자 결국 입원을 결심했다. 기침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엄마도 나도. 병원에 입원하고 정밀 검사를 받으니 맙소사. 결핵이라고 했다. 손수건에 피를 토한다는 그 병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심각한 건 아니라 입원한지 1주일 만에 퇴원했다. 헌데 결핵 약을 3개월이나 먹어야 한단다. 약을 그렇게 오래 먹어야 하다니. 괜찮을까 싶다. 또 불안하다.
우린 살면서 많은 일들에 불안감을 느낀다. 나라는 침략 당할까봐 경제가 무너질까봐 불안해하고, 개인은 그 나라에서 소외되고 낙오될까봐 두려워한다. 젊은이는 미래에 아무것도 되지 않을까봐 불안해하고, 나이 든 이는 삶이 흔들릴까봐 죽음이 다가 올까봐 두려워한다. 불안감에 익숙해지는 것. 그건 어쩌면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계속 부딪히고 넘어지고 울고 웃고 망설이고 생각하며 내 삶을 단련시켜 나간다면 가능하리라. 하지만 불안감을 선택할 순 없다. 그건 숙명 같은 것이다. 살아 있다면 죽을 때까지 불안감이 내 등 뒤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매달려 그 속으로 움츠릴 것을 권한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 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 憫 : 근심할 민 (근심하다, 고민하다, 불쌍히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