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나는 강박에 사로 잡혔다.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일찍 일어나 무어라도 해야 쓸모 있는 인간이 되지 하며 쓸모 있길 바랐다. 쓸모 있기 위해 일찍 자자.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날 테고 그럼 쓸모 있을 테니까. 아내에게 신고한 후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근데 쓸모없으면 또 어떤가? 하며 슬며시 부아가 치민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되지 왜 쓸모가 있어야 하는데? 방금 전까지 착실하게 이 닦고 드러누워 잠들기를 기다렸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제대로 열 받은 청소년마냥 괜히 쓸모없어지려 튕긴다. 그런데 어쩌랴. 그래봐야 이미 나는 누웠다. 번호표 받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잠이 오길 기다린다. 대기 인원이 꽤 많은가보다. 눈만 어둡고 아득해지지는 않는 걸 보면. 관두자. 스마트폰을 켜서 여기저기 기웃거려본다.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세상 모든 일에 나설 사람처럼 용감하게 화면을 터치한다. 그러다 아내에게 걸렸다. 안자고 딴 짓하던 어린이는 잔소리 한 번에 스마트폰을 포기했다. 좁은 화면에서 나와 다시 기다린다. 그래. 그냥 자자. 싶더니 알람이 울린다. 손을 더듬어 알람을 끄고 일어났다. 멍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새벽이다.
어제에서 오늘로 순간 이동하여 도착했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앉아 있다.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사람처럼 갈등한다. 더 잘까? 씻으러 가? 오래 고민하면 반드시 잔다. 나는 그냥 일어나 욕실로 걸어갔다.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감았더니 제정신이 돌아왔다. 얼굴에 스킨을 바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뭐가 많이도 왔다. 밤새 누가 말도 안 되는 메시지도 보냈고 업데이트 했다느니 수면을 기록하라느니 오늘 날씨가 덥겠다느니 하는 알람이 잔뜩 대기 중이다. 그 녀석 참 바빴구나 싶다. 근데 새벽엔 너랑 안 놀 것이다. 난 나대로 할 일이 있다. 노트북을 켠다. 쓴다. 뭐라도 쓴다. 다 쓴다. 그러다 더 써지지 않아 인터넷을 기웃거렸다. 이병률 시인의 글을 읽었다. 에세이도 시처럼 쓸 수 있구나 싶었다. 확실치 않지만 확실치 않아서 더 확실한 글을 읽으니 문득 배가 고파왔다. 허기진 나는 어제 먹다 남은 볶음밥을 냉장고에서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차가운 게 금방 따뜻해졌다. 숟가락으로 그걸 퍼 먹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아닌가보다.
나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대학교 때 처음 떠난 나 홀로 여행에서도 어쩔 줄 모르고 길을 잃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긴 했어도 즐기지 못했다. 혼자라는 사실에 기가 죽은 것인지 그게 아니면 외로웠던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그때마다 허기진 것처럼 배가 고팠고 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자꾸 돌아다녔다. 바다가 보이는 통영의 대학교 벤치에 앉아 공허한 냄새를 맡았던 그 시간이 기억난다. 흐릿한 하늘에다 안개까지 자욱하게 낀 그 날, 비가 오는 건지 안 오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슬대던 그 날. 인간은 결국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익숙하지 않다고 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숙명처럼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혼자라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했다. 내가 나를 가엾게 여기니 허기가 사라졌다. 그 날부터 나는 나에게 잘해주기로 했다.
새벽. 쓸모 있으려고 일어난다는 변명이 쓸모없는 시간. 혼자가 되기 위해 일어나고 홀로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리는 알 수 없는 운명의 결과. 새벽의 차가움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다. 적당히 따뜻해진 아침이 오면 잠든 아내를 깨울 것이다. 허기져도 불안해하지 않고, 죽을까봐 겁내지 않으며 용감하게 오늘을 살 것이다. 이제는 나와 당신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