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고 싶은 마음

키워드 5 : 정직 - 마음이 바르고 곧은 것

by 서효봉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 유언장 중에서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 주기 바란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정직’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의 이 유언장이 떠오릅니다.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이 살다가 ‘강아지똥’이라는 동화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그런 작가가 있는가보다 하고는 별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인의 미니홈피에 실린 글을 통해 우연히 권정생 선생님의 삶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슬펐습니다. 또 몇 년 뒤 그렇게 살아왔던 분의 유언장을 읽고 나니 저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한 번도 뵌 적도 없는 분인데 말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정직한 세상일까요? 아마 대부분 정직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이 정직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도덕책에도 정직이 중요하다고 나오지만 현실은 다르지요. 적당히 거짓말하면서 사는 사람이 이득을 보고 너무 정직하면 오히려 바보 취급당하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몇 사람만 그럴 필요 없다고 바람 잡으면 ‘정직’은 금방 구시대의 유물이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도 정직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잘못한 걸 누가 무섭게 다그치기라도 하면 당황해서 변명하기 바빴지요.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상황은 모면했지만 마음은 더 불편합니다. 그냥 탁 터놓고 ‘미안! 그거 거짓말이었다!’하고 지르면 속 시원하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요.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고부터는 능구렁이가 됐습니다. 잘못한 걸 굳이 드러내지 않거나 부당한 걸 그냥 무시하면서 슬그머니 넘어 갔지요. 그런 걸 삶의 지혜라 여기며 착각하기도 했지요. 제가 이렇게 갑작스레 참회하는 건 권정생 선생님의 유언장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껴서입니다. 정말 정직한 글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벌거숭이가 된 것처럼 어쩔 줄 모르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정직은 자신의 정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지요. 그 약속을 지키는 건 힘들지만 허물어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정의를 지키려는 영웅이 마음속에 있어도 그 영웅을 배반하면 그 때부터 영웅은 초라해집니다. 나도 초라해집니다. 정직은 곧 믿음과 연결됩니다. 정직하지 못한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믿는 아이는 없습니다. 어른을 불신하는 아이는 더 이상 어른들로부터 배우려들지 않습니다. 초라한 어른이 됩니다. 아이는 그런 어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니 온갖 논리와 변명으로 아이의 기를 죽이고 강제로 말을 듣게 합니다. 이렇게 억압이 시작되면 가정과 학교에 폭군 지도자가 탄생하거나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렇듯 정직하지 못하다는 건 생각보다 큰일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우리 어른들의 삶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고자 노력한다면 완벽하게 정직하진 않았더라도 꽤 정직한 삶을 살았노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정직은 권정생 선생님뿐만 아니라 이오덕 선생님도 생각나게 합니다.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로 오랜 시간 아이들에게 정직한 글쓰기를 가르치셨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엮은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아이들의 정직한 동시를 끝으로 이만 글을 줄입니다.


아기업기
- 문경 김룡 6년 이후분 -

아기를 업고
골목을 다니고 있다니까
아기가 잠이 들었다.
아기가 잠이 들고는
내 등때기에 엎드렸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
방에 재워놓고 나니까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

[출처] 이오덕의 <일하는 아이들>
개와 복숭아
-안동 대곡분교 3년 이재흠-

개가 어디서
복숭아를 하나 따 가지고
우리 집으로 와서 먹는다.
아주 맛있게 먹는다.
먹는 소리가 새근새근 난다.
하도 맛있게 먹어서
나도 뒷산에 올라서
복숭아를 하나 따먹어 보니
아주 맛도 없었다.

[출처] 이오덕의 <일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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