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4 : 긍정 - 그렇다고 인정하는 태도
우리는 평소에 크고 작은 걱정거리를 주렁주렁 달고 살지요. 당장 오늘 저녁에 뭐 먹을지 걱정입니다. 수입은 그대론데 돈 들어가는 데가 많아 걱정이지요. 남편이 아프면 걱정이고, 아내가 시무룩하면 또 걱정입니다. 아이가 유별나면 정말 걱정이지요. 전 이 글이 너무 재미없을까 봐 걱정입니다. 걱정은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때로는 그 무게로 인해 인생마저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지요. 걱정이 우리를 얼마나 못 살게 굴었으면 ‘걱정은 내게 맡겨! 넌 잠이나 자!’라고 외친다는 걱정인형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걱정이라는 게 정말 필요한 걸까요? 『느리게 사는 즐거움』의 저자 어니 젤린 스키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글에서 우리의 걱정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걱정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걱정
22%는 사소한 것에 대한 걱정
4%는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다.
따라서 나머지 4%만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진짜 사건에 대한 걱정이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것이다.
걱정이란 삶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주변의 일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하지요. 걱정이 심한 사람을 보면 마치 걱정이 현실화되었으면 하고 기도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모든 일에 긍정적인 사람은 걱정조차도 긍정적인 일로 만듭니다. 그들은 늘 자신감이 가득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지요. 미국 NBA의 보스턴 셀틱스 전 감독 릭 피티노는 “나는 하루 중 98%는 내가 하는 일에 긍정적이다. 그리고 나머지 2%는 어떻게 하면 매사에 긍정적이 될 수 있을까 궁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정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혀 태어나진 않습니다. 다만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요. 부정적인 선택을 한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대꾸하며 걱정만 늘어놓습니다. 반면 긍정적인 선택을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라고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나섭니다. 우리가 이렇게 순간마다 해왔던 선택이 모여 태도가 되고, 태도에 따라 부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을 나누게 됩니다. 사실 선택이란 무조건 개인의 의지로만 이뤄지는 건 아닙니다. 이건 마치 습관 같은 것이라서 누군가 그렇게 선택하는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기 시작해 끝없이 반복하게 되지요. 여기서 누군가란 대체로 부모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 보고 배운 부모의 행동들이 아이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합니다. 내 아이가 매사에 부정적이라면 내가 어떤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일입니다.
저도 아이들과 여행을 하면서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거의 매주 여행을 가고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게 됐지요.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니 특이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도 가끔 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항상 먹을 것을 손에 들고 다니며 먹는데 모든 생각을 집중한다든지, 흥분하면 친구든 선생님이든 관계없이 막말을 쏟아내며 때린다든지, 조금만 힘들면 울음을 터트리거나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든지, 나무만 보이면 원숭이처럼 올라가려고 한다든지 하는 행동 말입니다. 저는 일부 아이들의 이런 특이한 행동을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여행 일정을 진행하기 힘들 정도로 방해가 되기도 했기에 부정적으로 보기만 했습니다. 그런 행동들을 어떻게든 고쳐주려고 혼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요. 때로는 규칙을 정하기도 했고 따로 시간을 내서 왜 그러면 안 되는지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특이한 행동은 고쳐지지 않았고 노력하면 할수록 제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만 커졌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공부해보기로 했지요. 각종 교육 서적에 나오는 사례와 코칭 기법을 공부하면서 아이들의 행동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 근원에는 가정환경과 그런 행동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있었지요. 우선 저부터 태도를 바꿔봤습니다. ‘문제 행동’이라고만 여겼던 그 모든 행동들을 ‘다른 행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다르다는 말은 틀렸다는 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전에는 아이들의 ‘다른 행동’에만 집중했지만 이제는 그 행동들을 받아들이고 원인을 생각해봅니다.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이겁니다.
‘아이는 잘못이 없다.’
아이들의 ‘다른 행동’은 대부분 어른들로부터 오거나 어른이 만든 환경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니 혼내고 달래고 규칙을 정하고 상담해야 할 대상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그 둘레의 어른들이지요. 물론 아이는 무조건 천사요 절대적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도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고 생각이 자라면서 스스로 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도 인격체니 자유의지대로 행할 수 있지요. 이런 부분에 대해선 확실히 벌하고 바르게 이끌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의지보다 주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은 아이들도 피해자입니다. 피해자를 자꾸 혼내고 심문하니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의 입장에서 어른 눈에 보기 안 좋은 광경에만 자꾸 매달렸으니 상황이 나아질 리가 없었지요.
문득 제가 어렸을 때 저는 어른들을 어떻게 보았나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집안의 어른들이나 학교를 다니면서 만났던 선생님들을 생각해보면 대체로 거역할 수 없는 힘이라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어린 나이 특히 초등학생 때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자라나긴 하는데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지요. 어른들에 비해 힘도 약하고 돈도 없었으며 권력이나 명예 같은 건 당연히 없습니다. 나를 지켜주던 부모님마저 없으면 나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존재였습니다. 아이는 모든 면에서 어른들에 비해 불리합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어른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학교를 다니고 공부했지요. 돌아보니 저도 아이였습니다. 처음부터 어른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당연한 사실을 잊고 우리의 아이들을 대합니다. 마치 우리는 처음부터 바르고 정직하고 힘이 세고 돈이 있는 존재였던 것처럼 행세합니다. 이런 오만이 아이들을 무조건 뜯어고치려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걱정과 부정적인 태도로 나아갑니다. 이제는 그 오만을 버리고 우리가 아이였던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아이의 입장에서 지금 우리 아이를 바라볼 때 비로소 이해의 다리가 놓입니다. 그 다리의 건너편에는 우리 아이가 손짓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향해 긍정으로 화답하며 다리를 건너갑시다. 어느새 달라진 아이가 내 품으로 달려와 안길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