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이들 10명과 나주에 다녀왔다.
그 날은 아침엔 화창했지만 오후부터 조금씩 흐려졌다.
나도 아침엔 화창했지만 오후엔 조금씩 흐려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를 끝내고 차에 탔다.
함께 여행 갈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
시동을 걸고 예열이 되기를 기다렸다.
반복되는 엔진소리가 지난날의 추억을 속삭인다.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에 저장된 그 녀석들의 이름을 한번 훑어보았다.
익숙한 이름들이다.
6년, 이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지 4학년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그때부터 시작한 아이들이 이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된다.
작은 남자 개구쟁이들이 눈에 선하다.
긴장한 표정으로 줄 서서 내 차에 올라타던 녀석들.
장난치고 싸우고 웃고 떠들고 그렇게 나와 여행하며 하루를 보낸 아이들.
6년 동안 별의 별 일들이 다 있었고 전국 여기저기를 함께 쏘다녔다.
이제는 내 차가 비좁을 정도로 덩치가 커진 그 아이들과
마지막 여행이다.
내 감상적인 마음과는 별개로
모임장소에서 만난 아이들은 평소와 같이 태연하다.
차에 타자마자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을 시작하는 녀석도 있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숙면 모드로 돌입하는 녀석도 있다.
나도 평소처럼 인사와 잔소리 그리고 몇 마디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머나먼 나주까지 가는 동안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냈고
그 가운데 아자르라는 화상채팅 앱으로 잠시 떠들썩하다
휴게소에서 뭔가 사 먹기도 했다. 아니 흡입했다.
먹는 모습을 떠올려보니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한 듯하다.
달리고 달려 나주에 도착하니 바로 점심시간이다.
사실 일정을 하나 끝내고 점심을 먹어야 하지만
굶주린 아이들의 눈빛과 그 목소리를 보고 들으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바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마지막 여행인데 맛있는 걸 사먹으라고 했지만
어떻게든 돈을 아껴서 게임 아이템을 사거나 개인취미활동에 써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선 비싼 것보다 김밥집이 더 눈에 들어온다.
평소였으면 그들의 요구대로 김밥집 앞에 내려줄테지만 오늘은 마음에 걸린다.
나주에 왔으니 그 유명한 나주곰탕을 먹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오늘은 마지막이니.
9000원이나 하시는 그 귀한 걸 계속 권해보지만 쉽지 않다.
결국 저녁은 내가 사기로 하고 점심+저녁 값으로 나주곰탕을 먹는 걸로 합의했다.
사실 처음부터 저녁은 내가 사주리라 생각했지만 너무 일찍 공개해버렸다.
최고 맛집은 줄이 너무 길어 패스하고 두 번째쯤 되는 집을 남자 10명이 습격했다.
그렇게 곰탕을 해치우고 소몰이 하듯 아이들을 이끌고 일정을 진행했다.
오늘은 나주목사 행차길을 걷는 날이다.
걷기 여행이니 하염없이 걸어야 하지만 그냥 그랬다간 반란이 일어날지도.
금성관을 돌아보고 나주목문화관을 살펴본 다음 길 찾기를 시켰다.
모둠을 나누고 목적지를 찾아가게 했다.
한 녀석이 여행 안내소에서 지도를 얻어왔다.
안내소에 계신 할아버지의 일장연설을 듣고 얻은 인고의 아이템이라 했다.
몇 명의 아이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 그 아이템을 획득했고
목적지를 찾아갔다. 이제 길 찾는 것 정도는 사실 별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너무 여유가 넘쳐 나의 감시망을 피해 죄 없는 포켓몬도 여럿 잡았다.
다리 아플 정도로 여기저기를 들렸다.
나주목사 시장을 끝으로 일정을 끝낸 다음
금성관 주차장으로 복귀하면서 와플도 하나씩 입에 물었다.
차에 타기 전 지나가던 사람에게 부탁해 단체로 사진도 찍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차에서 아이들에게
종이를 나눠주며 마지막으로 나에게 편지를 쓰게 했다.
반항할 줄 알았던 녀석들이 순순히 쓴다. 그것도 제법 길게 쓴다.
휴게소에서 아이들이 저녁을 먹는 동안 편지를 읽어보았는데
문득 나도 아이들에게 답장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두운 차에서 A4 용지에 잠시 쓰다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막상 쓰려니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짜내서 쓰려니 꼰대 같은 이야기만 써진다.
게다가 그들의 무서운 식사속도까지 고려하니 가망이 없다.
결국 답장을 포기하고 다음 휴게소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동안의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걸로 매듭지었다.
고등학생이 된 걸 축하하는 의미로 캔 음료수를 사서 건배라도 하려 했더니
또 몇 명이 그걸 홀랑 원샷 해버렸다. 그래. 건배는 무슨.
아무튼 쑥스럽게 그동안의 소감을 한마디씩 하고 나도 잠시 이야기했다.
도착 장소에 도착하니 아이들 어머님들께서 나와 계셨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었다.
전체 인사를 한 뒤 나도 차를 타고 돌아왔다.
겉모양새는 그렇게 쿨하게 끝이 났다.
그러다 아이들의 편지를 다시 읽으며
포기했던 답장을 대신해 글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글은 그런 의도로 쓴 글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더라도
각자에게 한 마디의 아주 짧은 개인적 답장을 적어본다.
순서는 성씨에 따라 가나다순이니 혹여 이런 일로 나에게 카톡 보내지 말지어다.
동원아. 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아이다. 내가 너에게 배운 것은 자기 세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세계에도 관심을 가질 줄 아는 배려다. 그걸 오랫동안 간직하길 빈다.
용호야. 남자들만 득시글대는 이 속에서도 넌 유난히 정이 많았다. 나에게 보여준 그 따뜻함과 솔직함이 기억에 남는다. 넌 행복할 것이다.
민석아. 늘 밝은 모습.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도전적인 너의 에너지. 그게 너의 장점이다. 지금처럼 꾸준히 끼와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아라. 후회 없이 살아라.
재욱아. 네 편지에 그려진 나와 너의 성장 모습. 인상적이었다. 너에겐 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일 무엇이든 이룰 만한 능력이 있다. 너를 믿어라.
동주야. 처음 너를 보았을 때 반짝였던 그 눈빛이 기억난다. 오글거리더라도 그 눈빛이 너의 미래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넌 그만큼 듬직한 아이다.
동기야. 너의 매력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다 인정할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들의 밑바탕에 그것이 있음을 안다. 그 매력을 마음껏 펼쳐라. 할 수 있다.
동재야. 용기가 너의 힘이다. 난 너의 용기를 부러워한다. 사람에게 있어 용기란 목마른 덕목이다. 넌 그걸 가졌으니 지금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빈다.
경호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너와 이제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니 아쉽다. 넌 똑똑한 아이다. 책을 들고 온 너에게서 난 많은 자극을 받았다. 넌 그 맛을 안다. 그러니 계속 해라.
정운아. 너에겐 천부적인 능력이 잠들어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너의 창조적인 능력은 어쩌면 네 인생을 이끌어갈지도 모른다. 너에게 기회를 줘라.
우석아. 난 상황을 꿰뚫어보는 너의 능력에 놀란 적이 많다. 그걸 잊지 마라. 그리고 너에겐 리더의 자질이 있다. 언젠가는 알게 될 그 자질에 눈 뜨길 바란다. 고마웠다.
나에게 이럴 자격이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결국 꼰대 향기가 좀 난다. 어쩌겠는가?
이런 나도 지난 시간과 마지막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른답지 못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별이란 그런 것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 아쉬움.
그 아쉬움과 녀석들의 성장 아래
나도 많이 달라졌음을
잊지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