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 일하지 않는 사람

by 서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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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금요일 저녁은 KTX 표를 구하기 힘들다. 불금의 위력 아니겠는가? 특히 오후 6시 이후 기차는 모조리 다 매진되어 버렸다. 거참. 1일 생활권 시대. 불금이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오후 4시 기차를 탔고, 나는 오후 6시쯤 서울역에 버려졌다. 애초에 계획은 서울에 저녁 늦게 도착해 숙소에서 하루를 보낸 후 새벽 일찍 평창으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일 청량리역에 오전 6시 반까지 도착해야 하는 업무적 사명을 띠고 서울 땅에 당도했다. 그런데 너무 일찍 와서 어쩔 줄 몰라할 줄이야.


때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라 푸드 코트에 들려 김치볶음밥을 먹고 나니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다. 김치볶음밥의 밥알이라도 하나하나 세며 아주 느긋하고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어야 했는데. 평소처럼 흡입을 하고 말았다. 숙소는 8시부터 들어갈 수 있는데 난 벌써 자유다. 아니 자유가 아니라... 갈 데 없는 걸 뭐라고 할까? 유랑? 방랑? 아무튼 삿갓이라도 구해 쓰고 역 구석에서 시라도 읊어야 어울릴 신세가 되어버렸다. 밥 먹을 때 봐 둔 서울역 앞 서울로 7017. 그러니까 고가도로 형태의 산책길로 향했다. 먹었으니 산책을 해야지. 서울로 7017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다녔다. 서울에서 순식간에 중국 상해의 동방명주 앞 고가도로로 순간 이동해 온 느낌이다.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 중국 사람들 틈으로 걸어 다녔다. 너무 쉽게 목표를 달성하니 일부러 멀리 둘러서 올 걸 그랬나 싶다. 평소 같으면 서울역은 시간이 없어 바람처럼 스쳐 지나는 대표 명소일 텐데 오늘은 여기가 왜 이리 할 일 없는 장소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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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게 없으니 괜히 지나는 사람을 쳐다보고 길거리의 차들을 내려다본다. 멍하니 그렇게 있다 괜히 저기 저 사람들을 분류해보고 싶어 졌다. 이 사람, 저 사람, 그 사람까지 서른한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 마냥 다양한 그들을 나누자면 어떤 기준이 필요할까? 남과 여? 잘 생김과 못 생김? 키? 몸무게? 우리나라 사람인지 아닌지? 머리털의 유무? 안경 쓴 사람 안 쓴 사람? 혼자인 사람 혼자 아닌 사람? 뭐 이런저런 기준이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해보니 기준이라는 게 참 다양하기도 하고 그 기준에 따라 사람이 각각 달리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쓸데없는 기준 마련에 머리를 굴리는 동안 사람들의 행동 관찰 결과가 발표되었다.


내 나름대로 조사해보니 사람은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여기서 일하지 않는 사람이란 백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하얀 손의 사람들이여 진정하라. 일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지금 무슨 일이든 자기가 맡은 걸 하고 있는 사람이다. 상점의 직원들, 역무원, 경찰, 버스 및 택시 기사 아저씨들. 그러니까 진지하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가끔 농땡이도 치는 그런 사람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대체로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하고 있는 상태인지 놀러 온 상태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아무튼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가끔 진상도 부리는 고객님들이다. 지금 이 순간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일하는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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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경계라는 게 참 모호해서 이걸 분류했다 말할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대체로 그렇다. 일하는 사람은 확고하게 무언가를 반복하고 있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지나다 길거리에 핀 봄꽃에 잠시라도 코를 댄다. 일하는 사람에게 오늘은 금요일이고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오늘은 오늘이다. 그럼 난 일하는 사람인가? 일하지 않는 사람인가? 일하러 와서 일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다. 이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뭐가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 그저 이 풍경을 자세히 뜯어보니 그 안에 일하는 사람이 있고 또 일하지 않는 사람이 뒤섞여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서울역 주변을 어슬렁대다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왜 그렇게 나를 빤히 쳐다봤느냐고. 그렇게 바쁘게 지나가는 와중에 그 정도로 오래 눈을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깐. 묻고 싶다. 혹시 나에게 할 말이 있었던 게 아니었냐고. 그래서 잠시라도 우리가 될 뻔했던 건 아니었냐고. 복잡해도 소리 없이 봄꽃 핀 이 풍경이 말한다. 우린 지금 우리고, 분류 따위는 슬픈 일이라고. 일하든, 일하지 않든 누구든 한 시대를 함께 사는 인간,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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