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에게
토요일은 여행 가는 날이며, 일요일도 여행 가는 날이다.
뭐 가끔 아닐 때도 있지만 대체로
월, 화, 수, 목, 금, 여, 행
주말마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닌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닌다는 건
때론 멋지고 때론 힘들며 때론 웃기고 때론 무섭다.
여행이 일이 된 사람의 입장에선 여행을 즐긴다기보다
여행을 해내면서 산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나에게 여행은 주말마다 주어지는 미션이며
이 미션은 절대 실패해선 안 되는 미션이라 할 수 있다. 일이니까.
친구들은 날 보고 맨날 놀러다니니 좋겠다고 하지만
난 모르는 소리 마라며 징징댄다.
이런 내 곁에 항상 함께하고
나를 오롯이 이해해주는 존재가 있으니
붕붕이로 말할 것 같으면 2014년 어느 공장에서 태어나 은색 빛깔 옷을 입고
갖가지 특수기술을 연마한 후 나에게로 인도된 최첨단 능력자다.
그의 앞에 이미 붕붕이 1세부터 3세까지 거쳐 갔으니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친구는 정확히 '붕붕이 4세'라 할 수 있다.
무려 12명을 태우고 달릴 수 있는 그를
세상 사람들은 '그랜드 스타렉스'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지만
어느 날 아이들 덕분에 '붕붕이'라 불리게 됐다.
오래 전, 나에게 처음으로 차(물론 내차가 아니라 회사차)가 생긴 날.
들뜬 마음으로 그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우~렁찬 엔진소리~
지금보다 훨씬 혈기 왕성했던 그 당시 차가 생겼다는 건 큰 축복이었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과 삶이 대한 자신감이 과하게 흘러 넘쳤다.
난 이 녀석의 이름을 뭘로 지을지 한참 고민했다.
'미션 임파서블?', 'GSJ(그랜드 스타렉스 짱의 약자)?', '슈퍼노바?'
뭐 이런 영어로 된 이름들을 나열하며 최대한 멋지게 지어보겠다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다 별안간 스위스의 수도 베른(곰이라는 뜻)은 베른을 세운 체링겐 공작이
사냥을 나가 잡은 첫번째 동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 나도 운명에 맡기자. 이 차로 함께 여행할 첫번째 아이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정하자'
그리하여 첫번째 아이들을 만났고,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1학년 아이들의 작명 센스는 놀라웠다.
'붕붕이로 해요~ 자꾸 붕붕거리잖아요'
'그래요~ 붕붕이. 붕붕이.'
애들아 이 소리가 어딜봐서 붕붕거리는 소리니? 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붕붕이 1세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나이든 붕붕이는 노후화를 이유로 내 곁을 떠나갔고,
지금 내 곁에서 나와 혼연일체가 되어 여행하는 친구는 붕붕이 4세다.
남자답고 멋진 이름 놔두고 왜 하필 '효봉'인가 하며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를 원망했다.
'효도의 봉우리'라는 이름의 의미도 별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효도까진 좋다 이거야. 근데 봉우리는 뭐냐고 대체!' 하며
이불킥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별명은 '봉'자가 들어가는 것이면 거의 모든 게 가능했다.
이 자리에서 '봉'자가 들어가는 별명 목록을
하나씩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니 그냥 나열하기 싫다.
나를 부를 때마다 '보오옹~' 하고 길게 빼서
부르며 재미있어 했던 선생님을 미워하기도 했다.
발음이 잘 안 되는 교생 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때
'서효뵹', '서효병', '서효븅' 이라며 3단 콤보를 날려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내 이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철이 들면서 내 이름도 장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일단, 같은 이름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물론 인터넷에 검색 하면 그 옛날 효봉 스님이라는 분도 사셨고
나 말고도 김효봉, 박효봉, 최효봉이라는 분이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허나 오프라인에서 대면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마 사는 동안 동명이인 때문에 오해를 받을 일은 없으리라.
또 하나 좋은 게 뭐냐면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
대체로 평범했던 나는 사람들에게 주목 받을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 이름을 소개하고 나면
다들 처음엔 '이름이 좀 깬다~'는 분위기였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 이름을 마구 응용하면서 나와 가까워졌다.
나에게 봉~ 봉~ 거리면서 다가와 친해진 인물이 꽤 많았다.
나의 이름은 그렇게 나와 사람들을 연결해줬다.
물론 지금도 택배 아저씨가 '서효범씨 되시죠?' 하며
택배를 전해주고 청구서에도 가끔 그렇게 찍혀 오는 걸 보면
차마 내 이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세력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뭐 그러면 어떤가?
어찌 됐든 난 서효봉이고,
내 친구의 이름은 붕붕이다.
멋진 이름이 아니라 좀 아쉽긴 해도
내 이름 때문에 다 큰 어른들끼리 한바탕 웃을 때도 있고
내 차 이름 때문에 낄낄대는 아이들도 있으니
그만 하면 좋지 아니한가?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다른 존재와 나를 구별해주는 이름.
사람들은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고,
난 그들의 이름으로 그들을 부른다.
이름을 말하면 떠오르는 그 사람의 느낌.
말 한마디로 오만가지 생각과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를 호출해준다.
이름이 곧 존재가 되고 존재가 이름을 위해 산다.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의 이름 속에서 향기가 느껴지고
그 이름 하나로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누군가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이름을 남기기 위해 한 생(生)을 쏟아붓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말들의 홍수 속에서도
나의 눈과 귀에 오롯이 홀로 들어오는
뚜렷하게 구별되어지는
단 하나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