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아이

by 서효봉

날씨 좋은 어느 토요일.

그 날도 변함없이 아이들과 여행을 떠났다.

대전으로 가서 화폐 박물관, 과학 박물관, 동물원을 들리는 날이다.


아침부터 아이들은 들떠 다.

뭐가 그리 좋은지 몰라도 가방 매고 모임 장소에 나란히 줄 서 있다.

매달 만나면서도 어색한 인사를 하며 차에 올라탄다.

나에게 안부를 묻곤 지난 번보다 늙었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지난 번보다 더 촐랑댄다는 대꾸로 응수했다.


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잠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학교에서 유행 중이라는 홍삼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아싸~ 홍삼~~"


계속된 홍삼 게임으로 아이들 모두 한창 기분이 업 되어 있다.

그렇게 오늘도 즐거운 여행을 시작하나보다 했다.

그런데 도로를 달리다 저 멀리 동물의 시체가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들 역시 시체를 발견했다.

저게 뭐지 하면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길 가운데 쓰러져 있는 동물 시체가 우리 앞에 있던 차들에 치인다.

2~3번 그 과정을 반복한 시체는 납작하게 땅에 들러 붙어버렸다.

불과 몇 초만에 아이들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공포 영화를 본 것처럼.


차를 타고 다니다보면 사고를 당해 처참히 죽은 동물들의 시체를 볼 수 있다.

일명 '로드킬'이라고 불린다.

시체는 끔찍하게 훼손되고 주변엔 피가 튀어 있다.

우리는 이런 동물들의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누군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지 모른다.

또 누군가는 '뛰어드는 동물이 어리석은 거지!' 하고 화낼지도 모른다.

그 어떤 반응이라도 절대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두자.

살아 있는 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그것을 우리의 아이들이 여러분의 자녀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마지막 일정이었던 대전 동물원에서 우연히 동물원 동물들을 위한 위령비를 보았다.

동물원에 갇혀 지내다 죽은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는 비석이다.

다들 동물 구경한다고 정신 없었는데 아이들 중 제일 키 작은 아이가 그 앞에서 기도하는게 보였다.

무슨 기도를 했냐고 물으니 아침에 죽은 동물이 좋은데 가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나도 고개를 숙였다.

아이를 향한 부끄러움은 고개를 들었다.


동물들의 죽음을 어쩌지 못하는 건 관심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인간만이 생명체인 듯 산다.

다 죽고 인간만 남으면 과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기도하는 아이에게라도 배우자.

나는 그 마음을 본받아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라도 가져보려 한다.


법정 스님의 책 <산에는 꽃이 피네>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가 사는 곳에는 눈이 많이 쌓이면 짐승들이 먹이를 찾아서 내려온다. 그래서 콩이나 빵부스러기 같은 먹을 걸 놓아 준다. 박새가 더러 오는데, 박새한테는 좁쌀이 필요하니까 장에서 사다가 주고 있다. 고구마도 짐승들과 같이 먹는다. 나도 먹고 그 놈들도 먹는다. 밤에 잘 때는 이 아이들이 물 찾아 개울로 내려온다. 눈 쌓인 데 보면 개울가에 발자국이 있다. 그래서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서 해질녘에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구멍을 만들어 둔다. 물구멍을 하나만 두면 그냥 얼어 버리기 때문에 숨구멍을 서너 군데 만들어 놓으면 공기가 통해 잘 얼지 않는다. 그것도 굳이 말하자면 내게는 나눠 가는 큰 기쁨이다.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아무리 살기 팍팍해도 조금 나누고 살아야겠다.

조금 관심을 가져야겠다.

로드킬 당하는 동물뿐만 아니라 전쟁, 가난, 재해에 휩싸여

지구상 어딘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기도하는 아이에게 배웠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향한 자세.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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