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앞바다의 기억

by 서효봉

전남 신안군에는 임자도라는 섬이 있다.

오랜 전 나는 그 곳에 있는 신안 청소년 수련원에 아이들과 함께 갔었다.

2박 3일 정도하는 여름 캠프였기 때문에 평소와 달리

40명쯤 되는 많은 아이들을 버스에 태워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는 신안 앞바다에서 캠프를 진행했으니

당연히 갯벌 체험이 하이라이트였는데 수련원 조교 선생님들이 수고해주셨다.


조교 선생님들의 구호에 따라 준비 운동을 하고

아주아주아주아주 무거운 고무보트를

모둠별로 머리에 이고 바다로 향했다.

보트를 타고 조금만 가면 작은 무인도에 도착할 수 있는데

거기서 온갖 프로그램을 하며 아이들과 즐겁게 놀았다.

무인도에 도착 후 조금 지나니 물이 빠져서 섬이 육지와 연결되었다.

육지와 섬 사이에 드넓은 갯벌이 나타났다. 장관이었다.

당연히 갯벌에 삼삼오오 앉아 죄없는 갯벌 생물들을

체포하는 즐거운 체험을 함께 했다.


그렇게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다

다급한 조교 선생님들의 외침을 들었다.

곧 물이 들어올테니 빨리 보트를 타고 귀환하라는 거다.

갑작스러운 지령이었지만 나와 다른 선생님들은

여기 저기 흩어진 아이들을 금방 한 곳으로 모았다.

일단 먼저 모인 아이들부터 선생님과 보트를 타고 출발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아이들이 떠나고 마지막 남은 6명의 아이들과

나 그리고 또 한 명의 선생님이 갯벌에 남았다.



이미 물이 많이 들어왔지만 우리에겐 보트가 있었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을 먼저 보트에 태우고 다른 선생님도 보트에 올라탔다.

나는 있는 힘껏 보트를 밀어보낸 다음

안전을 위해 주변을 맴돌던 조교 선생님들의

빨간 모터 보트를 탈 작정이었다.


사력을 다해 보트를 밀었고 아이들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며 배웅했고 홀로 물이 차오르는 갯벌에 서서

조교 선생님들의 모터 보트가 이 쪽으로 오길 기다렸다.

드디어 빨간 모터 보트가 굉음을 내며 근처로 왔다.

조교 선생님 가운데 가장 무섭게 생기신 한 분이 확성기로 나에게 외쳤다.


"이제 애들은 다 타고 갔죠?"

"네 다 타고 갔습니다. 저만 가면 됩니다."


근데 갑자기 그 모터보트가 방향을 틀더니 한 마디만 남기고 돌아가버렸다.


"저희가 좀 바쁘니까 선생님은 알아서 수영해서 오세요오~~"


그렇게 야속한 빨간 모터 보트는 쌩하니 육지쪽으로 가버렸다.


"저기요. 이봐요. 그냥 가면.. 허얼~~"


순간 머릿 속이 하얗게 되면서 작게 혼잣말을 했다.


"난 수영 못 하는데..."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기에 목숨이 위태로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발이 땅에 닿지 않으니 겁이 났다.

공포를 느끼며 물 위에 둥둥 떠다닐 때 나는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처음엔 어떻게든 수영이란 걸 해서 빨리 육지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되지도 않는 개헤엄을 치며 용을 썼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괜히 힘만 빠졌다.

이번엔 수영선수처럼 자유형을 흉내내 봤지만

자꾸 얼굴이 물 속으로 들어간다. 물만 먹었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서 배영을 시도했는데 맙소사. 육지가 점점 멀어진다.


그렇게 나홀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아이들과 다른 선생님들 그리고 조교 선생님들은

쪼르르 수련원으로 들어가버렸다. 나중에 듣기로 배고파서 식당으로 다들 달려갔다고 한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된 나는 반쯤 포기하고 계속 떠다녔다.

구명조끼를 입고 물 위에 떠서 넓고 넓은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니 기분이 묘했다.

주변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난 그냥 떠다녔다.



그렇다고 마냥 가만히 있을 순 없어 한번씩 육지쪽으로 가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팔을 휘저어서 최대한 잘 떠내려가도록 조치를 취했다. 방향은 맞아야 할 거 아닌가.

죽은 사람마냥 둥둥 떠서 하늘 구경을 한다. 그러고보니 나도 참 태평한 인간이다.

소리라도 쳐서 도움을 요청해야지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면서도 이렇게 고요하게

하늘 바라볼 기회가 또 언제 있겠냐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찰랑이는 물소리.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불안감. 몸부림과 망연자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아름다운 하늘빛.

너무 고요해 멍하게 만드는 비현실적 정적.

천국이라 말해도 믿을만한 풍경.


그 상태로 나는 30분을 떠다녔다.

어떻게 하다보니 자동으로 해변에 도착해 발이 땅에 닿았는데

그 때 왜 안도감보다는 아쉬움이 밀려올까?

나를 버리고 간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아무일 없다는 듯 식당에 모여

왁자지껄한 식사를 하고 있었고 나도 그냥 아무일 없다는 듯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서 밥을 흡입했다. 정말 꿀맛이었다. 아니 꿀맛보다 더 맛났던 거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때 신안 앞 바다를 둥둥 떠다니며

나는 일종의 평화를 얻었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바다를 떠다니며 하늘을 바라보니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슨 특별한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멍하니 하늘만 구경했다.


그 순간, 난 위로 받았다.


누군가 사랑한다 말해주지 않아도,

누군가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난 그냥 위로 받았다. 마음 속 깊이.


의도치 않은 평화를 경험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가끔씩 그때 그 탁 트인 신안 앞 바다의 하늘과 고요함이 떠오른다.


겁에 질려 개헤엄도 치고 자유형, 배영까지 흉내내며 바둥거려도

별 수 없음을 알게 되니 평화가 찾아왔다.


엉뚱한 곳에서 갑자기 불쑥 나타난 그 평화로움.

그리고 나만의 위로.


그립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 마하트마 간디-
이전 10화새벽 생각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