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5시가 되었습니다. 오전 5시가 되었습니다.”
오늘 새벽,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5시가 되었다는 저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얼마 전 스마트폰 알람의 새로운 기능을 알게 됐는데 그건 바로 ‘시간 읽어주기’ 기능이다. 그냥 마구잡이로 울리던 알람음악보다는 지금 몇 시라는 음성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알람음악을 증오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이용해보길.
아무튼 그렇게 일어나 잠이 덜 깬 몸을 이끌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잠이 덜 깨 바지를 거꾸로 입었다가 다시 입었다. 춥겠지? 싶어서 최대한 무장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스마트폰을 보니 기온이 9도란다. 오호. 봄은 봄인가베. 무장 해제. 엘리베이터에서 1주일 전 세찬 바람이 불고 검은 봉지가 춤을 췄던 공포의 새벽 운동을 떠올리니 갑자기 오싹해졌다. 밖으로 나가니 다행히 오늘은 분위기가 좋다. 바람도 불지 않고 산뜻한 새소리까지 들린다. 만세. 우리 동네에 평화가 찾아왔다.
달리기 전에 몸을 풀기 위해 한동안은 걸었다. 기온이 딱 좋다. 춥지도 덥지도 않다. 이 정도가 운동하기엔 제일 좋은 날씨인 것 같다. 공원은 고요했고 가로등 불빛도 가지런했다. 이런 좋은 분위기에 음악이 빠질 수 없지. 집에서 챙겨온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들었다. 이 블루투스 이어폰은 내 동생이 나에게 선물해 준 아주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왼쪽은 너무 작게 들리고, 오른쪽은 너무 크게 들린다는 결정적 결함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음질이 구리다. 이런 기분 좋은 새벽이 아니라면 용서가 안 될 만큼. 나 같은 막귀가 음질 타령하니 웃기긴 한데 들어보면 알 것이다. 절로 카세트테이프 시절이 떠오른다. 그래도 내 동생이 직접 구입해 선물해 준 녀석이니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선 블루투스다. 선이 없어 자유롭다. 운동할 때 딱이다. 배터리가 오래간다. 목에 거는 넥밴드 형식이라 편하다. 이어폰이 귀에서 잘 빠지지 않는다. 이외에도 몇 천 개쯤 되는 장점이 있지만 생략한다.
이 오묘한 녀석의 편리함을 새삼 느끼니 내 동생 생각이 났다. 지금쯤이면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월요일이니 출근하기 싫은 날일테다. 주말과 가장 먼 아침에 일어나는 그 막막한 괴로움을 곧 느낄 것이다. 이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카카오톡을 열어 적당한 이모티콘을 섭외한다. 카카오 프렌즈는 언제나 유용하다. 착한 녀석들. 파이팅하는 모습의 이모티콘과 함께 힘내라는 메시지를 적었다. 이제 보내기만 누르면 갈 터인데 망설여진다. ‘자는 데 깨우는 거 아닌가? 남자끼리 이런 메시지라니? 너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메시지를 보내는구나.’라는 신의 메시지를 전해 들었다. 신을 무시하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눌렀으니 어쩔 수 없다. 잘 가라 이놈의 신. 근데 달리기는 언제 하냐고? 이제 해야지.
달린다. 음악을 들으며. 뭐 얼마 못 달릴 거라는 거 잘 알지만 그래도 달린다. 아직 컴컴한 새벽 공원을 달리는 건 즐겁고도 힘든 일이다. 이 공원 전체를 빌린 것처럼 나 혼자 달린다는 사실은 아주 즐겁지만 내 저질 체력을 자동으로 확인하다는 측면에선 괴롭다. 즐겁고 괴롭다. 괴로워서 즐겁다. 이 무슨 마조히스트 같은 소린지 모르겠지만 진짜 그렇다. 숨을 헐떡이며 내 자신을 괴롭히면서 즐겁게 달려보라. 음악을 들으며 한 발을 내딛고 다시 한 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 과정은 예술에 가깝다.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진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뜀박질 속에 진정한 자유가 느껴진다. 달리기. 이 수상한 행동은 어떤 의미인가? 날마다 달리는 소설가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은 적어도 내가 나 자신의 신체를 실제로 움직임으로써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잘 응용할 수 있는 범용성은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무엇이 어떻든 간에, 그것이 나라는 인간인 것이다.”
달린다. 새벽 공기의 냄새가 음악과 뒤섞여 머릿속을 지배할 때, 빠르게 뛰는 심장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시로 만든다. 서서히 시간이 빨라진다. 지나가는 색깔 있는 풍경의 흐려짐, 가로등 불빛의 채도, 얼굴을 만지는 다정한 공기, 발밑을 지나쳐 지워져가는 보도블럭. 내 앞으로 펼쳐진 아직 닿지 못한 그 지점을 향한 몸부림. 닿을지 알 수 없지만 달려가는 사람. 달려가야만 하는 우리의 슬픔. 달려야 닿는 기억 속의 아픔, 아픔에 맞서 이 시대를 이겨내는 사람들. 하루에 지쳐 주저앉고 답답함에 숨죽이며 살아내는 거역할 수 없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눈물조차 허락되지 않는 바싹 말라버린 생활. 겁을 주는 생존. 뒤쫓는 불안감.
달린다. 저 멀리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 지를 수 있는 자유, 누가 보든 말든 아무 이유 없이 울어버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용기로.
나는 달리다 울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렇게 오늘 새벽,
나의 위로를 완성했다.
이제, 다시, 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