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역사를 공부했을 것이다. 우리 역사든 남의 역사든 역사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니까. 아내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역사 가르치는 일을 한다. 수업할 때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는데, 가끔은 나를 상대로도 수업을 한다. 아니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가수 이적이 딸을 위해 그린 동화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지금부터 동화 모드예요. 제목은 별과 혜성 이야기예요.
옛날 옛날 먼 우주에 작은 별이 하나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작은 별은 항상 외로워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디에선가 불로 된 꼬리를 지닌 혜성이 하나 나타났어요. 작은 별은 반가운 마음에 “혜성아, 안녕! 나랑 친구가 되어 줄래?”하고 물었어요. 하지만 혜성은 대답도 없이 쏜살같이 날아가 버렸어요. 작은 별은 너무 섭섭하고 외로워서 엉엉 울고 말았어요. 그리고 다시 작은 별은 긴 시간을 혼자 지내야 했어요. 그렇게 72년이 지난 뒤... 멀리서 그때 그 혜성이 또 나타났어요. 그런데 잘 들어보니 혜성이 날아오며 뭔가 막 소리치는 것이 아니겠어요? 작은 별을 스쳐 지나가며 혜성이 외쳤어요. “지난번엔 미안했어! 너무 빨리 지나가느라... 그래, 우리 친구가 되자!” 혜성은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며 덧붙였어요. “다음번에, 72년 뒤에 또 만나!” 그러고는 금세 사라져 버렸어요. 하지만 혼자 남겨진 작은 별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답니다. 아주 가끔씩이기는 하지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생겼으니까요. 작은 별과 혜성은 다시 친구를 만날 생각에 언제나 두근두근 설레며 우주에서 빛날 수 있었답니다. 끝.
인터넷에 있는 동화 내용을 그대로 옮겼어요. 아니, 아니 그대로 옮겼다. 미안하다. 갑자기 반말 같네. 요. 아무튼 이 이야기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지만 솔직히 다른 한 편으로는 슬펐다. 72년이라니. 동화니까 ‘그렇게 72년이 지난 뒤’라고 간단히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일까지도 신경 쓰인다. 별아 이건 아니지 않니? 72년 동안 혼자였던 거니? 작은 별도 아닌 그 별 위에 얹혀사는 인간 따위라 충고할 입장은 못 되지만 그냥 다른 친구 찾지 그랬어. 오지랖이 우주까지 뻗어나가는 소리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슬퍼서 눈물이 날 뻔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외로움에 트라우마 있는 사람처럼 들릴 것이다. 생각해보니 있는 것도 같다. 이런 것도 트라우마로 쳐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구역 근처에는 번개시장이라는 시장이 있다. 새벽에 장을 열었다 번개처럼 빨리 마감한다고 해서 번개시장이었는데 현재는 상설시장이다. 게다가 번개시장은 대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울산, 삼척, 원주, 춘천 등 전국 여러 곳에... 위키백과의 지식을 내 지식인양 뽐내보았다. 어쨌든 오랜 전 나는 여기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그때가 학교 가기 전이니 5살? 6살쯤 되었을 때?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갔다 혼자 떨어졌다. 나는 무서워서 울기만 했다. 비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라 진짜 번개 칠까 봐 식겁했네. 어릴 적 기억이 많지 않은데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홀로 버려졌다는 느낌. 사람은 많은데 다들 바쁘기만 하다. 게다가 언제 칠지 모르는 번개. 난 그때까지 번개시장은 번개가 자주 치는 시장이라 믿었다. 그땐 키즈폰도 위키백과도 없었다. 엄마라는 안전장치를 잃어버린 아이에게 몇몇 사람들이 뭐라고 묻지만 들리지 않는다. 그저 엄마 찾아 삼만리.
그때가 처음이었다. 외롭다는 느낌의 시작. 그 이후로 집안의 불화, 동네 친구들의 멸종, 학교생활의 척박함 등을 거치며 다년간 외로움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누구나 겪는 외로움이라 생각했다. ‘나 외로웠어’하고 징징대거나 번개시장을 원망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다 대학에 가고 나서 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술자리에서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너, 외로웠구나?”
그래? 내가 외로웠어? 그때까지 난 내가 외롭다는 걸 실감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다 혜성이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지나갔다. 갑자기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72년이 지난 뒤... 가 아니라 7.2시간쯤 뒤 몇몇의 친구들과 자취방에 누워 있었다. 술병이 나뒹구는 그 자취방은 일정한 주기로 오픈했고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나와 친구들은 저녁마다 마실 술 생각에 언제나 두근두근 설레며 대학을 다녔답니다. 미안하다. 이런 저급한(!) 표절(?)은 삼가해야 하는데. 부디 이 글을 이적 씨와 어린 친구들, 동화 관계자 여러분들이 읽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어쨌거나 동화가 해피엔딩이라 너무너무 다행이긴 하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다. 별은 외로웠다. 외로움은 혜성을 만나 더 커졌다. 72년. 그 긴 시간을 외로워 한 별에 대한 슬픔이 이 글의 시작이다. 외로워도 외로운 줄 모르고 사는 게 사람이고, 외로움을 알게 되면 그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는 게 사람이다.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사람이니까. 여러 번 이 동화를 읽으며 나는 딸을 위해 이런 동화를 지은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그가 직접 종이에 엉성하게 그린 별을 사람들은 참 자세히도 보았다. 여러 번 지웠다 다시 그린 그 흔적까지. 우리가 자세히 본 이유는 따뜻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니까. 결국 사랑이니까.
우리 주변을 혜성처럼 지나는 사람들. 나는 누군가에게 별이고, 넌 누군가에게 혜성일 테지. 세상에는 수많은 별과 혜성이 있지만 너무 차갑게 지나진 않았으면 좋겠다. 갑자기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헤어지더라도 다정하게 인사하고 외롭지 않게 친구가 되자. 아이들에게 전한 그 따뜻한 사랑을 생활 속에서 증명하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빛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