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빅. 삐비비빅. 알람시계 소리에 잠이 깼다. 터치. 하고, 다시 자야지. 딩디딩디딩. 딩디딩디디딩. 흐흐. 이게 맞나? 아무튼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휴대폰은 좀 멀다. 일어나서 걸어가야 끌 수 있지롱. 다시 잠들 것을 예상한 어제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치사한 놈.
요란한 휴대폰을 어루만져 진정시키고 냉장고로 향했다. 일어나면 냉수 한 잔. 나의 오랜 버릇이다. 오장육부여 일어나라~! 잠은 좀 깬 것 같은데 여전히 몽롱하다. 컴퓨터를 켠다. 띵동. 행정안전부에서 문자가 왔다. 04시 30분 호우경보. 산사태 및 상습침수 등 위험지역 대피, 외출 자제 등 안전에 주의 바랍니다.라고 문자가 왔다. 창밖을 보니 비가 많이 오긴 온다. 출근길이 걱정된다.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겨 한글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 커서가 깜빡인다. 그래. 잘 지내지? 깜빡. 깜빡. 별일 없다니 다행이구나. 깜빡. 깜빡. 근데 뭐 쓰냐? 깜빡. 깜빡.
몽롱한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려던 찰나에 누가 뺨을 때렸다. 오잉? 나의 오른손. 장하다. 네가 해냈구나! 샤워부터 해야겠다. 그래야 왼쪽 뺨이라도 무사하지. 샤워를 하고 다시 앉았다. 그래. 이거다. 맑은 정신. 돌아온 영혼. 컨디션 좋아. 기념으로 인터넷에 들어 가보자. 국지성 호우, 돌풍, 벼락? 태풍도 지나갔다는데 이게 무슨 일? 재개발 소문에 집값 과열? 새로 나온 스마트폰 갤공책...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지? 왼쪽 뺨마저 맞아야 정신 차리겠느냐? 아... 이게 아니지. 황급히 인터넷 창을 닫고 나의 사랑(?) 한글 워드 프로그램으로 복귀. 애증의 흰 화면. 깜빡. 깜빡. 이제, 쓸 때도 됐지 않냐? 깜빡. 깜빡. 집어치워라. 그냥.
무안하여 옆에 보이는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출력이 안 되는 걸 보니 입력을 좀 해야겠다. 김영하의 단편소설 ‘아이를 찾습니다’를 읽었다. 읽는 순간 눈이 책에 붙은 것처럼 고정되어버렸다. 역시 그의 소설은 흡입력이 강하다. 마지막에 며느리(?)로 추정되는 여자가 주인공 집에 아기를 놓고 가는 장면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렇게 기가 막힌 설정이라니! 더 봤다간 내일 새벽까지 이러고 있을 것 같아 다른 책을 들었다.
이번엔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었다. 요즘 내가 킥킥대며 즐겨 읽는 책이다. 재미있게 보다가 ‘퇴사의 맛’이라는 부분을 읽었는데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나도 몇 시간 뒤 노예가 될 예정이다. 그래. 노예 생활을 너무 오래 했더니 노예인 줄도 몰랐네그려. 사춘기 방황의 끝에서 정체성을 찾은 기분이랄까. 하여간 퇴사의 맛은 꿀맛이라는 게 글의 결론이다. 꿀맛 좀 보고 싶다. 오늘이라도 당장! 맛 좀 볼래?!
그러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다시 읽었다. 역시 좋은 책이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낀다는 그의 말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는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 먹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그래. 인간은 동물이다. 멍멍이 같은 동물! 멍멍아, 미안해. 잠이 부족하니 헛소리가 나온다. 뭐 하나 제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긴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새벽 여행은 참 이상한 것이다. 폐 깊숙이 차갑고도 낯선 공기를 밀어 넣는데 왜 그게 또 그리울까?
새벽의 끝. 기념품을 본다. 멸종된 글감. 사라진 아이. 파괴된 일상. 노예의 각성. 꿀맛 같은 자유. 생존용 행복. 끝없이 내리는 비. 덕분에 즐거웠다. 띵동. 이번엔 이 도시의 시청에서 문자가 왔다. 06시 30분 호우로 인해 출근길이 침수되어 교통이 통제되고 있으니 우회 바랍니다. 우회. 알았다. 오버. 아내의 기침 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단속하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배가 고프다. 행복해지고 싶다. 서재의 불이 꺼진다. 조용히, 새벽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