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

by 서효봉

지하실이 기억났다. 왜 갑자기 기억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기억났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지하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기에. 영래가 사라지고 한 달 동안 민정은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 이틀간은 밥도 먹지 않았다. 미국에 있다는 민정의 엄마는 연락 두절. 이쯤 되면 엄마가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인재는 보호자를 잃은 초등학생을 위해 잠시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할아버지, 보고 싶어?”

“…….”

“그래, 나도 이해해.”

“…….”

“곧 돌아오실 거야.”

“…….”

“아마도.”


그렇게 한동안 대꾸 없는 대화만 하다 지하실이 기억났다. 영래가 소설가의 서재 지하실에 가면 도움이 될 만한 걸 찾을 수 있을 거라 남겼던 그 말. 어쩌면 탐정 놀이 좋아하는 초등학생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도.


“우리, 서재 지하실에 한 번 내려가 볼래?”

“…….”

“어쩌면 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단서?”

“우왓! 드디어 말했다. 난 네가 실어증 걸린 줄 알았잖아!”

“빨리 이야기해 봐요!”

“아, 그게 말이지.”


인재는 영래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민정에게 이야기 해줬다. 민정은 그 이야길 왜 이제 하냐는 듯 잠시 쏘아보더니 말했다.


“근데, 여기 지하실이 있어요?”

“오잉? 너도 몰라? 넌 아는 줄 알았는데….”

“그럼, 빨리 내려가 봐요!”

“근데, 어디로?”

“어디로?”

“그래, 어디로?”

“지하로!”

“그러니까 어떻게?”

“어떻게?”

“지하실 입구가 어디냐고.”

“헐,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인재와 민정은 일단 서재 1층으로 내려가 입구다 싶은 곳을 찾아봤다. 하지만 1층은 출입문을 제외하곤 온통 책장뿐이라 문은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도 밖에 있었기 때문에 문이 없는 건 확실했다. 마을 회관에 갇혔을 때처럼 혹시 책장 뒤에 뭔가 있을까 싶어 열심히 살펴봤지만 먼지만 났다. 인재와 민정은 건물 밖으로 나와 서재를 천천히 뜯어보았다.


“음….”

“음….”

“따라 하지 마.”

“따라 한 거 아니거든요.”

“아무리 봐도 지하실은 없는데?”

“저도 지하실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착각하셨나?”

“그럴 리가….”

“혹시 2층에 있는 거 아닐까?”

“지하실을 2층에서 간다고요?”

“뭐, 1층에 없음, 2층에 있겠지. 착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그럼, 혹시 할아버지 작업실에서?”

“영감님도 작업실이 있었어?”


소설가의 서재 2층엔 7개의 작업실과 응접실이 있는데, 인재는 영래가 여기서 작업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서재를 2년이나 관리했지만, 이상하게 영래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 서재는 제 작업실에서만 갈 수 있어요.”

“헐, 정말?”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 민정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작업실 한쪽에 있는 책장을 밀었더니 마치 회전문처럼 책장이 움직였다.


“영감님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


인재와 민정은 영래의 작업실을 살피기 시작했다. 들어가는 방법이 특별하긴 했지만, 작업실의 형태는 다른 작업실과 다를 게 없었다. 다만 그동안 영래가 받았던 수많은 문학상과 출간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어 대단한 소설가의 작업실이라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여기도 혹시 책장을 밀면?”

“밀면?”


인재는 호기롭게 작업실 안에 있는 모든 책장을 밀어보았다. 하지만 책장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힘만 빠졌다. 민정은 초등학교 입학식 때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인재가 사진이 든 탁상용 액자를 집어 들려고 했지만, 책상에 고정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이게 왜 안 움직여?”

“지금 장난해요?”


민정도 액자를 잡고 당겨봤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씨름하다가 민정이 무심코 액자를 밀었는데 마치 무슨 버튼이 눌린 것처럼 뒤로 넘어갔다. 잠시 후 기계음이 들리며 작업실 전체가 엘리베이터처럼 내려가기 시작했다. ‘띵’하는 초인종 소리가 난 후 출입문을 열었더니 민정의 작업실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편에 계속>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1화옛날, 먼 옛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