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손전등 모드를 켜고 그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갔다. 3초쯤 지났을까? 저절로 전등이 켜졌다. 지하실엔 탁자 하나와 낡은 책장들이 전부였다. 책장에는 골동품처럼 오래된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고 탁자엔 노트북과 스마트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인재가 책장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는 동안 민정은 노트북과 휴대폰을 켰다. 노트북 바탕화면에 있는 동영상을 재생하니 영래의 얼굴이 나타났다.
“민정아, 만약 이 영상을 네가 보게 된다면 난 지금쯤 다른 세상에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할아버지!”
“믿기 힘들겠지만, 소설가의 마을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존재한단다. 그 문으로 네 아버지가 사라졌고, 난 그 문을 찾아, 오랜 시간 돌아다녔지. 그러다 내 소설 속에 나오는 또 다른 나와 싸우게 됐어. 내가 그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난 그놈의 세계로 끌려갈지도 몰라. 만약 혼자 이 영상을 보게 된다면 모든 걸 잊고 절대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마렴. 만약 누가 우릴 위해 나서줄 수 있다면 그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에게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일방적인 영상 편지는 그렇게 끝났다. 민정은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나더니 다시 시무룩해졌고, 인재는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휴대폰에는 딱 한 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바로 ‘Mr. N.’이었다.
“Mr. N.?”
“아니, Mr. N.은 영감님 아니었어?”
“빨리 전화해 봐요.”
“그래, 그래.”
인재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아주 나이 든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오랜만이네, 잘 지냈는가?”
“저기,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아니…. 조 선생이 아닌가? 당신은 누구요?”
인재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민정을 쳐다봤다. 민정이 바꿔 달라고 손짓하자, 인재는 휴대폰을 민정에게 넘겼다.
“저는요. 할아버지 손녀예요. 할아버지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영상 편지를 남겨서 전화했어요.”
“아, 조 선생 손녀?”
“네, 네.”
인재는 깍듯한 민정의 태도가 낯설게 느껴졌다. 나한테 막 대하던 그 초등학생이 맞나 싶다. 저럴 때 보면 초등학생이 아니라 다 큰 어른 같다. 민정은 다음 날 그 노인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하실 탐사를 마친 인재와 민정이 서재 응접실에 갔더니 동혁, 준수, 희경, 루키가 모여 있었다. 민정을 본 희경이 말했다.
“민정아, 오늘은 표정이 좋아 보이네?”
“네!”
동혁이 깜짝 놀라더니, 말했다.
“우와, 말했어. 대답했다고.”
준수와 루키도 놀라며 이야기했다.
“이제, 괜찮은 거야?”
“민정, 다행이다. 걱정했는데.”
다들 달라진 민정의 모습에 놀라워하는 동안 인재는 영상 편지 속 영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라니…. 게다가 소설 속에 나오는 또 다른 나와 싸운다고? 이 말을 정말 믿어야 할까? 물론 인재는 그날 보았다. 마을 지하 벙커에서 어떤 문을 열고 사라진 영래를. 그리고 다른 사람처럼 돌변한 영래를. 그렇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 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 위험한 곳에 민정을 데리고 가는 게 옳은 일인가?
다음 날, 인재와 민정은 약속 장소에 나갔다. 노인은 시내에 있는 오래된 찻집에 앉아 있었다. 자신을 양 교수라 소개한 노인은 인재와 민정을 보자마자 앞으로 할 모든 이야기를 믿지 않을 거라면 그냥 돌아가라고 단호히 이야기했다. 도움이 필요한 건 인재와 민정이었다. 설사 그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해도 일단 들어는 봐야 했다. 그렇게 그 노인은 10년 넘게 연구했다고 하는 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