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 한복을 입은 노인은 녹차를 마시고 있었다. 도 닦는 사람처럼 긴 머리는 거의 백발에 가까웠고, 피부는 까무잡잡했다. 길에서 만난다면 ‘도를 아십니까?’하고 물어볼 것만 같은 그런 사람이다. 민정은 그 노인, 그러니까 양 교수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저희 할아버지는 어떻게 아세요?”
“조 선생? 그게 그러니까, 8년쯤 됐나? 경찰서 유치장에 처음 만났지.”
“네? 유치장이요?”
“그래, 점잖아 보이는 양반이 경찰서에서 사납게 소리 지르더라고.”
“할아버지가요?”
“그래서 이야기 몇 마디 나눴는데, 그 연못에 대해 자꾸 묻더라고.”
“연못?”
“지금은 연못이 아니라 마을이겠지. 그 불타버린 마을.”
인재와 민정은 양 교수가 소설가의 마을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이 사람도 그 마을이 불타버린 걸 알고 있었다. 인재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어르신,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아냐고?”
“네, 외부에 전혀 알리지 않았는데.”
“그런다고 감춰지겠어? 거긴 내가 십수 년을 연구한 곳인데 당연히 그 정도는 알아야지.”
민정은 고쳐 앉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 할아버지가 어디로 간 건지 혹시 아시나요?”
“음, 조 선생이 사라졌다면 그 세계로 간 것이겠지. 아마도.”
“그 세계?”
“그래, 소설의 세계.”
“소설의 세계?”
인재는 예상대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소설의 세계라니? 지금 무슨 소설 쓰나? 아님, 잠꼬대? 인재는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어르신은 그 세계가 소설의 세계인지 어떻게 아시죠? 가 보셨나요?”
“허허. 조 선생하고 똑같은 질문을 하는군.”
“똑같은 질문이요?”
“내 대답도 똑같네. 난 거기서 10년을 헤매다 나왔다네.”
“10년?”
인재는 뜻밖의 대답에 당황했다. 양 교수는 마치 무슨 이웃 나라 이민 갔다 온 것처럼 태연히 이야기했다. 소설의 세계에서 10년 살다 왔단다. 민정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그 세계로 가는 문은 어떻게 찾을 수 있어요?”
“왜? 할아버지 찾으러 가려고?”
“네.”
“꼬마야, 그 세계는 어디 놀러 가듯이 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야. 한 번 들어가면 나오는 게 거의 불가능해.”
“네? 나오는 게 불가능하다고요?”
인재는 양 교수의 대답에 절망하는 민정의 표정을 보았다. 세상에 안 된다는 말만큼 답답한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양 교수는 ‘거의’라는 표현을 썼다. ‘거의’는 무조건, 완전히 와는 다른 뜻이다. 예외도 있다는 말일 테지.
“그럼, 어르신은 어떻게 나오셨는지….”
“나? 나야 천재니까 나올 수 있었지. 천재가 아니면 힘들어.”
인재는 이런 상황에서도 재수 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구나라는 걸 느끼며 일단은 그 방법을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탁드려요. 방법 좀 알려주세요. 그 문을 찾아서 들어가고 나오는 방법이 있을까요?”
“뭐, 그렇게 부탁 안 해도 알려주려고 했네. 내 말을 믿는다면 말이야.”
“믿는다면?”
시무룩하게 앉아 있던 민정이 끼어들어 말했다.
“믿어요. 믿을 테니까, 빨리 말해주세요. 할아버지.”
“음, 그럼 혹시 꼬마야, 이야기 엔진이라고 들어봤니?”
이야기 엔진? 그러고 보니 마을 지하 벙커에서 영래가 엔진이나 돌리러 가야겠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땐 그게 무슨 발전기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이야기 엔진이라니? 인재는 문득 지하 벙커의 깊은 곳에서 봤던 거대한 장치가 떠올랐다.
“혹시 그 엔진이라는 게 엄청나게 큰가요?”
“음, 자네는 그걸 본 모양이지?”
“네, 그게 맞다면요.”
인재는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양 교수에게 이야기했다. 사정을 전해 들은 양교수는 이야기 엔진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다. 소설가의 마을에 나타나는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 엔진을 이용하면 그 문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열 수 있게 된다. 인재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어르신, 그날 영감님이 소설가들로부터 뭔가를 뽑아내던데 혹시 그게 뭔지 아시나요?”
“연료?”
“연료요?”
“그래, 엔진을 돌리려면 연료가 필요하네.”
“그 연료가 뭐죠?”
“보통 사람에게선 얻을 수 없는 거지.”
“보통 사람에겐 없는 것?”
“소설가의 상상력이라네.”
“상상력?”
“뇌에는 상상력을 담당하는 부분이 있다네. 소설가들은 그 부분이 특히 발달 돼 있지.”
“그게 연료라고요?”
“그래, 그렇게 믿는다면 말이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