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인재가 이전 세계에서 갖고 온 지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뭔가 새로운 목표를 찾아가라는 암시처럼 몇 개의 산이 그려져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산에는 드래곤 한 마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법사는 소설가들을 모아놓고 전에 이야기했던 부탁이란 걸 했다. 오래전, 이 세계를 지키던 선한 드래곤과 세계를 파괴하려는 악한 드래곤이 큰 싸움을 벌였는데 결과는 무승부였다. 기력이 다한 두 드래곤은 긴 잠을 자게 되었다. 이후 10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최근 악한 드래곤이 깨어났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인재가 물었다.
“그래서요?”
“그대들이 선한 드래곤을 찾아 깨워주실 수 있겠소?”
“저희가요?”
“그렇소. 오래전 예언에 따르면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했소.”
“아니, 저희는 아무 능력도 없는데….”
“능력보다는 운명이 중요한 것이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법사도 소설가들이 불안했던지 창고에 있던 온갖 마법 무기들을 꺼내 선물했다. 그렇게 등 떠밀리듯 소설가들은 그 지도가 표시한 곳을 향해 출발했다. 처음엔 마법사가 빌려준 독수리를 타고 숲의 끝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숲이 끝나자 독수리들은 돌아갔고, 소설가들은 걸어서 지도에 표시된 곳까지 가야 했다. 마법사의 말에 따르면 별일이 없다면 걸어서 이틀이면 된다고 다. 하지만, 그 이틀 사이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났다. 동혁은 난쟁이 왕과의 담배 피우기 내기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았다. 준수는 독버섯을 먹고 죽다 살아났다. 민정은 토끼를 쫓아가다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매다 겨우 돌아왔다. 희경과 루키 커플은 틈만 나면 사라졌다. 이상하게 인재만 별일이 없었다.
끝없는 행군의 와중에 괴물도 많이 만났다. 오우거, 골렘, 좀비들을 만나 식겁했지만, 그때마다 마법사가 선물해 준 마법 무기들을 사용해 겨우 물리칠 수 있었다. 자꾸 괴물을 물리치다 보니 이제 자신감이 상승해 진짜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이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냐를 두고 밤새 논쟁하기도 했다. 결말이 해피엔딩이냐, 미스터리냐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도 했다. 마침내 지도에 표시된 지점에 도착했다. 백두산 천지처럼 생긴 산꼭대기였으나 천지와는 달리 분화구에 물은 없었다. 움푹 파인 그곳을 열심히 뒤져봤지만 대체 드래곤이 어디 있다는 것일까? 그때 하늘이 어두워졌다. 태양을 가리는 거대한 생명체가 나타났는데, 레드 드래곤이었다. 소설가들은 드디어 찾았다를 외치며 환호했는데, 그 드래곤이 분화구를 향해 불을 뿜는 게 아닌가? 소설가들은 달리고 또 달려 겨우 근처 있는 동굴 속으로 피신했다.
“와아, 통구이 될 뻔했어요.”
“착한 드래곤이라고 하지 않았어? 저게 어딜 봐서 착해?”
“그러게요. 완전 사나운데요?”
저마다 한마디씩하고는 동굴 바닥에 퍼질러 앉았는데 이상하게 덥다. 동혁이 투덜대며 말했다.
“이거 왜 이렇게 덥지? 들어올 때만 해도 시원했는데 말이야.”
준수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말했다.
“점점 습해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 와중에 민정은 동굴에서 보물찾기한다며 쏘다녔다.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두루마리 그림 하나를 찾아 들고 왔다. 인재가 펼쳐보니 판타지 세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양화 한 폭이 그려져 있었다. 동양화에는 대나무 숲과 구름, 학 같은 게 기묘한 구도로 그려져 있었다. 왜 이런 게 동굴 안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예사롭지 않아 챙겨두었다. 인재는 일단 동굴에서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준 마법 무기 중에 불 피우기 좋은 포션이 있어, 주워 온 나무에다 부었다. 역시 불이 잘 붙는다. 활활 잘 탄다.
잠시 후, 동굴 안에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은 동굴 안쪽으로 강하게 불었는데 너무 강해 전부 다 날아갈 뻔했다. 그러다 또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변해 동굴 바깥쪽으로 불었는데 이번엔 진짜였다. 소설가들 전부가 그 바람에 날려 동굴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강제로 동굴 밖으로 추방된 소설가들은 어리둥절 해하다가 겨우 다시 모였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화구 바닥이 갈라지고, 소설가들은 또 달리고 달렸다. 갈라진 분화구 바닥에서 거대한 생명체가 깨어나 올라왔다. 블루 드래곤이었다. 소설가들은 입을 쩍 벌리고 그 드래곤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하늘이 어두워지며 아까 나타나 불을 뿜었던 레드 드래곤이 등장했다. 블루 드래곤은 소설가들을 향해 말했다.
“인간이여, 그대들이 내 잠을 깨웠는가?”
인재가 대표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고, 저희는 동굴인 줄 알고 콧구멍에….”
“아무렇거나 간에 상관없다. 나는 곧 긴 싸움을 시작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갈 곳으로 가라.”
“어떻게?”
“열쇠는 그대들이 이미 가져갔다.”
블루 드래곤은 이 말을 남기고는 하늘로 날아올라 레드 드래곤과 한 판 결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드래곤들의 싸움은 세상을 뒤흔들었다. 소설가들은 빨리 이놈의 판타지 소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민정이 말했다.
“이미 가져갔다면, 열쇠라는 게 아까 그 그림 아닐까요?”
희경도 맞장구치며 말했다.
“그래요. 민정이 촉은 정확하다고요.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요. 인재씨.”
인재는 챙겨뒀던 그림을 꺼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걸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소설가들이 동양화를 들고 낑낑대는 사이, 블루 드래곤을 잠시 밀어낸 레드 드래곤이 분화구를 향해 불을 뿜었다. 거대한 불길이 분화구를 덮쳤다. 불길이 사라진 분화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설가의 서재 시즌 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