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 이지칸 행성은 회색이었다. 구름 같은 게 행성의 표면을 완전히 뒤덮고 있어 그 아래는 어떤 상황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그 행성에 착륙해보기로 했다. 그것 말고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구름 아래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번개가 치고, 태풍이 온 것처럼 엄청난 바람이 불어댔다. 그 아래로 거대한 유리 돔이 감싸고 있는 도시가 나타났다. 그 도시와 한참을 교신한 후 겨우 내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지칸 행성에는 시드족이라는 외계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오리처럼 생겼지만, 인간처럼 팔과 다리가 있었다. 뭐, 오리 인간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지구인과 흡사했다.
가장 다행스러운 건 이들이 난폭하거나 별난 외계 생명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시드족은 혹독한 이지칸 행성의 기후 아래 살아서인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걸 원했다.
미스터 코너 씨와 아몬드 봉봉은 그들의 행성에서 어떤 분란도 일으키지 않겠다는 서약을 세 번이나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주선을 받아준 이유는 지구인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구인이요? 저희 말하는 거예요?”
“그럼, 누구겠어? 우리 같은 떠돌이를 받아주는 건 흔한 일이 아니지. 아무튼 해루와 미카 덕분에 허락받은 것 같아.”
미카는 코너 씨의 말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평화를 원한다는 시드족이지만, 지구인을 원한다는 그들에게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만 같아서.
착륙한 그들을 맞이한 건 시드족을 이끄는 레오라는 지도자였다. 레오는 환영의 인사를 하고 그들을 정중하게 대접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레오의 시선이 계속 해루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루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있었다.
환영식이 끝나고 레오는 해루를 따로 초대했다.
“그대가 지구인인가?”
“네, 지구에서 왔죠.”
“지구는 아름답지?”
“그럼요.”
“넌 어린이라던데 정말인가?”
“네, 보시다시피 어린이예요.”
잠시 후 해루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레오의 말에 따르면 시드족은 어린 시절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어른으로 태어나므로 어린이가 없다.
“시드족은 고민이 많아. 어쩌면 그대가 우리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도.”
“고민이요? 어떤 고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부터 부탁하네.”
“네?”
다음 날부터, 해루는 바빠졌다. 어린이라는 존재를 처음 접하는 시드족들이 줄을 서서 해루를 기다렸다. 무슨 연예인 팬 사인회 같았다. 그들은 해루에게 고민을 이야기했고, 해루는 고민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지구인이여, 나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그렇다고 그만두기엔 또 너무 아깝고. 어떻게 해야 하지?”
“힘들면 안 하면 되죠. 뭐.”
“오”
이런 식이다.
“지구인이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어떻게 고백해야 하지?”
“그냥, 말해요.”
“어떻게?”
“지금 당장 가서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죠.”
“오”
해루는 처음엔 시드족들이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무슨 고민 같지도 않은 걸 고민이라고 털어놓고 말 한마디면 고민이 해결되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지도자 레오가 해루에게 물었다.
“우린 평화를 원하네. 어떻게 해야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몰라요.”
“……”
“지금도 평화로운데요. 뭘.”
“……”
그들은 해루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믿을 기세였다. 해루는 괜히 우쭐해져서 뭐든 물어보라며 배를 내밀었다. 레오는 이걸로 충분하다며 해루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답례로 그는 해루에게 멋진 걸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레오는 품속에서 리모컨을 꺼내 제일 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유리돔 위로 쏟아지던 비와 번개 그리고 바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조금 지나자 하늘에 오로라가 커튼처럼 펼쳐졌다. 해루는 그 광경을 입을 벌리며 쳐다봤다.
“날씨를 조종하는 거예요? 근데 왜 맨날 비 내리고, 번개 치는 날씨로 해뒀어요?”
“평화란 원래 그런 거라네. 지구인이여.”
“네?”
“오로라를 본 소감이 어떤가?”
“예쁘네요.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에요.”
“나도 처음이라네, 지구인 어린이를 본 건.”
“네?”
“고마웠네. 어린이여.”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