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해?”
“응, 진작에 시작했어.”
어둠 속의 거실. 방금 만든 팝콘을 든 엄마가 해루 옆에 앉았다. 해루는 소파에 길게 누운 아빠의 다리 위에 앉아 있었다.
지난주 내내 어벤져스 시리즈를 열혈 시청했던 해루는 영화가 지루했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미친 듯이 달리는 윌 스미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 속 지구에는 이미 외계인들이 사람으로 변장해 살고 있었다. 일급 국가 비밀 조직인 MIB(맨인블랙)은 지구인으로 위장한 불법 이민 외계인들을 잡아들이고, 목격자의 기억을 지웠다.
해루는 혹시 우리 엄마, 아빠도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빠의 다리를 꼬집으며 말했다.
“지구인 맞아?”
아빠는 두 다리로 해루의 허리를 감아 들어 올리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니, 화성인이닷! 요놈아!”
“으아악”
그때 아빠의 종아리로 엄마의 스매싱이 날아가 찰지게 맞았다.
“아, 해루 아빠, 조용히 좀 해! 하나도 안 들려!”
“허, 어차피 영언데 안 들리면 뭐 어때? 자막 있잖아. 자막.”
엄마 덕분에 아빠의 포박에서 벗어난 해루는 팝콘을 한 움큼 집어 아빠 입에 들이대며 웅얼거렸다.
“팝콘이나 드셔, 화성인!”
이 가족이 그러든지 말든지 간에 영화는 쉼 없이 달렸고, 막바지에 달했다. 어느 순간 지구의 한 장소에서 줌아웃 되더니 우주에 닿았다.
우주에서도 계속 줌아웃 되어 은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은하를 담은 거대한 구슬이 보이고, 그걸 다른 구슬에 부딪히며 노는 존재가 있다. 그 존재는 그걸 비슷한 구슬이 가득 담긴 주머니에 넣었고, 영화는 끝났다.
해루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저거 진짜야? 진짜 우주를 갖고 노는 외계인이 있어?”
“그럼, 여기 있잖아. 너희 엄마.”
“에이, 장난 좀 치지 말고.”
엄마는 이상한 질문과 황당한 대답을 주고받는 부자를 해산시켰다. 해루는 그날 밤 유튜브에서 우주의 비밀을 검색해 관련된 영상들은 죄다 보았다.
자는 동안 꿈을 꿨다. 꿈속에서 아빠의 얼굴이 외계인 얼굴로 변했고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를 찾아 후다닥 달려 나갔다. 거실에 있는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들었더니 그 손이 오징어 다리처럼 변해 해루의 손을 감쌌다.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몸이 둥둥 떠 있었다. 우주선 안이었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미카가 안으로 들어와 해루에게
“해루, 괜찮아? 소리 질렀어?”
식은땀에 젖은 해루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난처해진 미카는 그냥 가만히 해루의 말을 들으며 토닥여주다 나왔다.
우주선은 방향을 잃고 떠도는 중이다. 슬리피가 만든 워프 홀로 빨려 들어간 후 어딘지 모를 곳으로 와 버렸다. 슬리피의 우주선도, 에크하르트의 우주선도 보이지 않았다. 항법 장치와 시스템이 고장나 위치와 시간도 파악할 수 없는 상황.
코너 씨와 봉봉은 3일 연속 우주선 수리에 매달렸고, 해루와 미카는 우주선 안에 필요한 잡일들을 도맡았다. 특히 요리에는 전혀 소질 없는 두 남자였지만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군말 없이 먹어주는 두 외계 생명체 덕분에 별 탈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5일째 되는 날, 드디어 우주선 수리가 끝났다. 현재 위치는 바르돈 은하라는 곳으로 아무도 와본 적 없는 미지의 은하였다. 다행히 시간은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와 있었다.
미스터 코너 씨는 가장 가까운 행성인 이지칸 행성으로 가 보급과 통신을 해결해보자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도 이 행성이 어떤 행성인지, 어떤 생명체가 사는지 모른다. 다만 지도상 가장 가까운 곳이라 선택한 것일 뿐. 아몬드 봉봉은 죽은 듯이 떠다니던 우주선을 다시 가동했다. 항로를 설정하고 천천히 속도를 올린다. 앞으로 나아간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