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내게 남긴 것 3
8명에서 10명쯤 되는 아이들이 나와 함께 여행한다.
보통 3~4학년때쯤 시작하는데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면
같은 아이들이 대체로 6학년때까지 계속한다.
처음 시작할 땐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의존적이라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즐겁게 노는데 집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6학년쯤 되면 독립적인 활동도 많이 하고
상담을 통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집중한다.
오늘은 상담하면서 알게 된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여행하는 중에 무슨 상담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중간 중간에 짜투리 시간이 많이 남는다.
목적지까지 가는 차 안에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박물관에서, 예약한 체험을 기다리면서 등등
일정 사이에 조각난 시간들이 참 많다.
이런 시간들을 주로 활용하는데 상담이라기보단
그냥 잡담하는 것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본다.
아이들도 나도 큰 부담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다 6학년 2학기가 되어 여행이 마무리될 때쯤 되면
따로 시간을 내어 한 명씩 이야기를 나눠본다.
그럼 아이들은 대개 '갑자기 왠 상담?' 하면서 당황해하기도 하고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어색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이들의 표정이다.
나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이런 메세지를 읽었다.
어떤 아이는 '내가 크긴 컸구나! 이제 나도 어른인가?' 하는 분위기고,
또 어떤 아이는 '할 말 있었는데 잘 됐다.' 는 분위기다.
이야기해보면 아이들마다 스타일이 다 제각각이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열심히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고
물어보면 '네', '좋아요', '별일 없는데요', '흐흐흐' 하고 간단히 때우는 아이도 있다.
몇 가지 작전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끌어내 들어보면
학원이나 숙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 말곤 대체로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아이에게 다정한 아빠도 많고 교육 서적으로 열심히 공부한 엄마도 많아졌다.
세상이 다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이야기해 본 아이들은 그랬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보니 10명 가운데 꼭 1명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있었다.
'아빤 맨날 화만 내요', '우리 엄마가 무서워요', '물건도 막 집어 던지고 그래요'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로 아파하는 아이도 있다.
들으면서도 그게 진짜일까 싶은 내용도 있다.
아이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친구에게 말하면 소문날 것 같고,
선생님께 말하면 부모님께 알릴 것 같단다.
말할 데는 없고 집에는 가야 하고 그렇게 참고 넘어간단다.
'이제는 안 그러니 다행이죠. 머' 하고 배시시 웃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의 부모들과도 한번씩 상담을 한다.
부모들도 스타일이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걱정이 많다는 거다.
'우리 첫째는 이래서 걱정', '우리 둘째는 저래서 걱정'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 자체는 사랑하는 마음이니 큰 문제 없지만
그 걱정이 부모를 짓누르는 경우도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걱정 때문에 이것도 시켜보고 저것도 시켜본다.
아이가 걱정스럽다는 부모는 많지만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야길 계속 하다보면
10명 가운데 꼭 1명은 아이에게 상처 준 경험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 준 부모는 대부분 아이에게 상처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아이와 부모.
부모와 아이.
그들의 10%는 상처 받았다고 증언한다.
그렇지만 그 상처는 어디 말할 데도 없는 상처이고,
걱정에 짓눌려 관심도 가져보지 못한 상처이다.
이 상처에 나는 잠이 안오지만
90%의 희망이 10%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나설 것이라 기대를 걸어본다.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힘들어보이면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우리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