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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Feb 26. 2021

핫 초콜릿 한 잔의 의미

진짜 행복은 별 게 아니었음을

적당한 달콤함과 쌉싸름함,

벨벳처럼 부드럽게 스팀 하여 목 넘김이 좋은 우유,

하얀 눈처럼 소복이 쌓인 휘핑크림,

그 위를 살포시 덮은 코코아 파우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핫 초콜릿의 기준이다.


핫 초콜릿으로 유명하다는 곳이 있으면 꼭 한 번은 가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초코 덕후. 하지만 이 와중에 '얼어 죽어도 아이스'라는 또 다른 취향과 충돌하여 평소에는 아이스 초코로 스스로 절충안을 찾기도 했다. 


그런 내가 유독 스위스에만 가면 핫 초콜릿만 마신다. 

스위스의 여름을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내 '머릿속 스위스'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두 가지는 우유와 초콜릿이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 때문에 스위스에서 아메리카노보다 핫 초콜릿을 더 자주 찾는다.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 엄청 맛있는 거'라는 공식은 절대 실패를 부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스위스까지 와서 가장 맛있는 두 가지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고, 마지막 이유는 알프스 만년설을 바라보며 휘핑크림이 가득한 핫 초콜릿을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작고 소박한 로망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그리고

이번에 인터라켄에 다시 방문했을 때, 지난번에 먹지 못했던 핫 초콜릿을 먹으리라 다짐을 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스위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알프스는 융프라우가 아닐까. 스위스 수도는 몰라도 인터라켄과 융프라우를 지나치는 여행자는 없을 것이다. 마치 파리 = 에펠탑, 뉴욕 =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알려진 명소처럼.


그런 융프라우를 직접 올라가서 느껴볼 수도 있지만, 융프라우를 마주 보며 즐기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인터라켄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20분가량 오르면 튠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와 그 사이에 자리한 인터라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알프스 배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하더클룸 전망대로 갈 수 있다. 전망대는 유명한 사진 스폿이기 때문에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릴 테니 적당히 사람들이 빠질 때 즈음 가서 둘러보는 걸로 하고. 전망대에 자리한 레스토랑 겸 카페에는 많은 여행자가 햇볕을 쬐고, 풍경을 바라보고, 바람을 즐기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융프라우가 정면으로 보이는 - 가장 전망이 좋을 법한 - 자리를 찾아 짐을 풀고 바로 핫 초콜릿을 주문한다. 그리고 특별히 휘핑크림을 만년설처럼 가득 올려달라고 요청한다. 이때는 가격 비교도, 나의 까다로운 핫 초콜릿 기준도 필요 없다. 1)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2) 스위스에서 가장 맛있는 거, 3) 작고 소박한 로망을 모두 충족하는 순간이지 않나. 마침 스위스에서의 날씨 운이 너무 좋아 구름도 적당하고, 해도 쨍하고, 바람도 시원하다.


맞은편 바로 눈앞에 펼쳐진 알프스를 보며 '이 순간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구나.'라는 감정이 차오를 때쯤이면, 웨이터가 휘핑크림을 듬뿍 올린 핫 초콜릿을 내온다.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지는 시간.

정말 단순하지만, 세상 모든 고민 따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그런 순간이다.




핫 초콜릿 한 잔에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S




핫 초콜릿 멜란지 CHF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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