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한신포차였으나 지금은 칠성포차
얼마 전, 친구와 칠성포차에서 닭똥집을 시켜 놓고 이런 말을 했다. “아. 뭐 먹고 사냐?” 앞의 맥락은 기억도 안 난다. 뭐 먹고 사냐는 질문은 맥락 커터기 수준이니. 닭똥집을 시켜 먹을 돈을 벌고 있어도, 닭똥집과 함께 먹으면 더욱 핵꿀맛인 생맥주(맥스 생맥주가 특히 잘 어울려요)까지 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나 깨나 뭐 먹고살지 걱정 중이다. 우리는 그렇게 꽤나 진지한 대화를 9시까지 나눴다(코로나라 9시에 문을 닫으니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내년에도 할 수 있을까?” “근데 또 내년에도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끔찍해.” “이 일이 나한테 맞기는 할까?” “나중에는 이 일이 날 싫다고 할 수도 있겠지.” “이 회사는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아니,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냐?”
보통 말이 많은 술자리에서 안주는 찬밥 신세 아닌가. 말할 입만 있지 먹는 입은 없으니까. 하지만 닭똥집은 달랐다. 닭똥집 전용 철판은 빠르게 바닥을 드러냈다.
“우리는 너무 욕심이 많은 것 같아.” “맞아. 당장만 최선을 다하면 됐지. 왜 미래까지 걱정하는 거지?”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진 게 많은데 더 갖고 싶어서 안달 났나 봐.” “그러니까. 왜 이렇게 지금, 내가 가진 거에 집중을 못 하는 거냐?” “욕심쟁이라 그렇지 뭐. 근데 닭똥집이랑 양파 왜 이렇게 잘 어울리냐.”
이게 닭똥집을 먹으면서 할 소린가. 이 얘기만 몇 시간을 해대고 칠성포차를 나왔다. 심각한 대화를 나눈 것치곤 턱이 아팠다. 우리는 턱을 어루만지며 칠성포차 옆에 있는 인생 사진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직장생활 3년 차인 우리는 회사와 일, 관계와 인생에 대한 고민을 껴안고 사진을 찍었다. 심각한 고민을 한 것치곤 행복한 결과물이 나왔다. 아보카도 모자를 쓰고 뽀로로 인형도 든 보람이 있었군.
겨울이라 춥고 밤이라 어두웠지만 굳이 집에 가는 길에 롱패딩에서 인생 사진을 꺼내 보았다. 이래서 다들 사진을 찍는 건가. 추억여행이 시작됐다. 10년 전 한신포차에서 닭똥집을 처음 먹었을 때가 생각나더라. 막 대학교에 입학해 세상만사가 신기했던 병아리 시절. 물론 지금 닭이 됐단 소린 아니다. 아직 한참 멀었지. 여하튼 한신포차의 닭똥집엔 양파 대신 통마늘이 있다. 아니, 그 조합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걱우걱 먹고는 입가심은 소주로 했다. 생애 첫 소주는 날 화장실에서 잠들게 만들었지. 그럼에도 무슨 얘길 했는지는 기억난다.
“우린 커서 뭐가 될까?” “뭐든 되겠지. 돈 좀 벌어보고 싶어.” “얼마 벌고 싶어?” “200.”
나는 10년 후 200을 버는 사람이 됐다. 그런데 아직도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 10년 뒤에 닭똥집이나 먹으면서 또 얘길 나눠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