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에 된장찌개를 넣어보세요

┏상상도 못한 먹고사니즘┛

by 올대리
글/그림 : 하무나

난 젊은 사람 치고 누룽지와 된장찌개에 진심인 편이다. 혼자서 1년 정도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 누룽지와 된장이 준비물 리스트 TOP10에 올랐더랬지. 옷과 장신구는 없어도 누룽지와 된장은 중요한 20대 초반 여대생의 캐리어는 그랬다. 딱딱한 누룽지를 기내에서 주전부리처럼 먹어도 되고, 뜨거운 물을 부어 식감 좋은 누룽지탕으로 아침을 해결해도 된다. 냄비에 물과 누룽지를 가득 담아 끓이면 숭늉이 되는데, 숭늉만큼 핫한 후식은 없지. 된장 역시 용도가 다양하다. 오이나 고추, 또는 돼지 목살을 찍어 먹을 수 있는 양념장이 되는가 하면, 물의 양에 따라 찌개도 되었다가 국도 된다. 고추장찌개에 된장을 살짝 풀어 넣으면 감칠맛이 사는데 이때는 조미료가 되고. 이쯤 되면 누룽지와 된장은 음식계의 카멜레온이다.


서른 평생을 캥거루로 살아온 나만의 팁은 여기까지다. 여전히 요리는 서투르지만 누룽지와 된장은 이 정도 쓰고 먹을 줄 안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누룽지는 누룽지대로, 된장은 된장대로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누룽지랑 된장으로 글까지 쓸 만큼 좋아하면서 왜 둘을 함께 먹을 생각을 못했는지.


작년 여름, OK목장이라는 바비큐 식당에 갔다. 인생의 반 이상을 알고 지낸 찐친과 찐친의 어머니, 그리고 나와 우리 엄마라는 상상도 못 한 조합으로.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전용 식당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이 조합도 처음이었다. 찐친과 나는 장난기가 정말 정말 정말 많은데 다행히 엄마들도 장난기가 많았다. 어색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유전자가 무섭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고 왔다. 하여튼 우리는 쉴 새 없이 고기를 먹으며 떠들었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저마다의 먹고사니즘을 얘기했다.


“예전보다야 지금이 먹고 살기 나아졌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요. 어떻게 어영부영 살아왔는데 언제 50대가 된 건지.”

“코로나 때문에 다들 어려운데, 요즘 일은 잘 되세요?”

“좀 힘들어졌는데 그래도 어떡하겠어요. 먹고살려면 해야죠.”


엄마들은 오른손 하나로 고기도 굽고, 딸내미들 접시에 고기와 김치를 올려주며 오늘의 먹고사니즘을 논했다. 아니, 오늘이라고 할 수 있나. 저 이야기를 30년째 들으며 자란 것 같다. 엄마들이 챙겨준 고기를 김치에 싸서 입에 욱여넣었다. 야외라서 그런가 어찌나 꿀맛이던지. 당시 나는 퇴사 1일 차였고, 친구는 퇴사 예정자였는데 그래서 더 핵꿀맛이었나.


“아 회사 안 가니까 이상한데 행복하네. 아직 1일 차라 그런가?”

“부럽다. 난 언제 1일 되냐. 빨리 1일 되고 싶다.”

“근데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면 그만 놀고 싶겠지?”

“ㅇㅇ. 월급 없어서 불안하고 뭐 먹고 살지도 모르겠고 또 그러겠지.”


이때 후식으로 누룽지가 나왔고, 된장찌개가 리필됐다. 친구는 먹고사니즘을 떠들면서 누룽지를 앞접시에 덜었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친구는 누룽지 접시에 된장찌개까지 덜어버렸다. 이 순간이 새로운 먹고사니즘의 길을 열 줄이야. 이런 걸 운명이라고 부른다. 우연히 섞인 누룽지와 된장찌개는 미친 맛을 자랑했다. 한 입 떠먹은 친구의 부릅뜬 눈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난 그날 저녁도, 다음날 아침도 누룽지에 된장찌개를 섞어 먹었다. 지금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은 누룽된찌와 함께한다. 이 정도면 당분간의 먹고사니즘은 해결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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