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고등학교 6학년

뭐 해먹고 살아야 하지

by 올대리

일주일의 적응기를 끝내고 개강 파티에 참석했다. 삼겹살집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은 현역이고 중간중간 재수, 삼수한 친구들이 보였다. 나는 삼수한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물어보면 대답했겠지만 굳이 나서서 말할 것까진 없었다. 나이는 프라이버시 영역에 속하므로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밝히고 싶은 사람만 스스로 밝히는 듯했다.




"이름이 뭐예요?"

맞은편에 앉은 분홍 귀걸이가 말을 걸어왔다.

"김은, 이에요."

나는 일부러 이름 뒤에 한 템포를 쉬었다.

"김은이요?"

"아 외자예요, 외자. 김. 은."

뻔한 레퍼토리다. 내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늘 저렇게 묻곤 한다.

"이름 되게 독특하시다! 정말 잘 어울려요!"

"감사합니다. 아, 성함이...?"

"권희수입니다."

"아아, 네 반가워요 희수님."

"저도 반가워요. 은님? 은이 님?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요..."

"아... 편하신 대로 하하하..."

나는 멋쩍게 웃었다.

"아 그럼 은님! 혹시 동아리 같은 거 들 생각 있으세요?"

"하나쯤은 들고 싶은데 고민 중이에요. 희수님은요?"

"저는 신보사요! 제 꿈이 기자라서요."

"신보사요? 사실 저도 신보사에 관심이 있는데, 혹시 정보 좀 있을까요?"

대략 신보사에 대해 알고 있지만 혹여나 새로운 정보가 있을까 모르는 척했다.

"저도 그냥 듣기만 한 건데, 합격하는 것도 꽤 어려운 거 같더라고요. 포기할까 했는데 스펙은 물론이고 도움이 좀 될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매일 기사를 쓰니까. 신문 보셨어요? 퀄리티가 상당하더라고요. 거기 국장이 좀 빡쎄고 또라이라는 소문이 있긴 한데..."

"그, 머리 짧으신 그 여자분이요?"

"네 맞아요! 되게 잘생기신 분. 그 선배가 학교에서도 유명하대요. 13학번인데 학교도 계속 다니시고요. 아 맞다. 예전에 변태 교수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선배가 총대 메고 대자보 붙여서 내쫓은 적도 있대요. 거의 전설로 남아있다던데."

음지 커뮤니티에서 읽었던 것 같다. 그게 그 국장 얘기였구나. 편한 길 놔두고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할까? 졸업은 왜 여태 또 안 했고? 보기보다 나이도 많고. 그래 봤자 나랑 두 살 밖에 차이는 안 나지만. 삼수를 하는 바람에 괜히 학번만 더 벌어졌다. 숫자는 압박감을 심어주는 데 용이한 녀석이다. 나이에, 학번에, 이젠 학점까지 걱정해야 될 텐데. 이 세상엔 신경 써야 할 숫자가 너무 많다.

"근데 신보 사하면 시간을 많이 빼앗길 것 같아서 좀 걱정은 돼요. 저번에 우연히 신보사 부스를 지날 일이 있었는데, 피곤한 건지 책상에 엎드려서 주무시고 계시더라고요."

나는 고민된다는 듯 말했다.

"그것도 너무 멋있지 않아요? 또라이란 소문도 있긴 하지만 멋있어서 팬도 꽤 많더라고요. 하여튼 저도 시간 때문에 걱정이긴 한데, 그건 되고 나서 걱정하셔도 될 것 같아요. 생각보다 경쟁이 꽤 세서 들어가기 어려워요."

"그래요? 동아리 서류만 내면 합격하는 거 아니에요?"

"어우, 아니에요. 신입생들이 귀신같이 어떻게 알고 찾아가는지... 스펙 좀 된다 하는 동아리 경쟁률이 100대 1까지 가는 경우도 있어요. 신보사는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높은 편이에요."

갑자기 욕심이 난다. 언론사는 다 죽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네임벨류는 탄탄하구나. 원서라도 써볼까. 제출기한이 좀 남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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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저녁 식사 준비가 한창 중인 우리 집. 아빠와 엄마, 언니가 차례로 나와 식탁에 앉는다. 방에 들어가 가방을 놓고 대충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식탁에 나와 앉았다.

"은이는 학교는 좀 어때?"

아빠가 물었다. 아직 음식을 입안에 넣기 전이라 대화가 가능하다.

"네 수업 질도 좋고, 친구들도 괜찮은 것 같아요."

"다행이네. 수업 외에 다른 건 준비하는 건 없니?"

"필요한 영어 자격증은 입학 전에 다 따놨고, 일단 수업에 매진할 생각이에요. 수업 강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따라가는 데 집중해야 학점이 잘 나올 것 같아서요."

"좋아. 그래도 빨리 졸업하고 유학 가고 취직하려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거야."

"아... 그래서 학교 신보사 활동을 하면서 스펙을 좀 쌓아볼까 생각 중이에요."

"교내 신보사?"

"네..."

아빠의 되물음에 나는 괜히 기가 죽었다.

"애들끼리 언론사인 척하면서 술 먹고 노는 곳 아니니?"

나야 신보사 학생이 아니니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빠 눈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언론사인 척이라니... 아빠의 말에 괜히 화가 났다. 그러나 나는 밥 대신 화를 삼켰다. 모름지기 감정은 얼굴에 절대로 드러내선 안 된다.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스펙으로 유명해서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엄한 데 시간 빼앗기지 말고 공부할 수 있는 쪽으로 찾아보는 게 낫겠다."

"네... 좀 더 알아볼게요..."

나는 고 6이었다. 누가 초등학교만 6학년까지 있다고 했던가. 여전히 성인이 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대학만 오면 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나 보다.




밤새도록 작성한 원서를 들고 신보사 앞에 섰다. 시대가 어느 땐데 오프라인 제출인지. 그 또라이 국장의 고집인가. 후, 막상 제출하려니 갈등된다. 기껏 썼는데 안 되면 어떡하지. 아니 근데 또 되면 어떡하지? 따위의 고민들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그때, 안쪽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악! 깜짝이야!"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질 뻔 한 걸 또라이 국장이 잡아줬다.

"괜찮아요?"

어쩜 저렇게 하나도 놀라지 않을 수 있지.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아... 아... 네..."

"그거, 제출할 거예요?"

또라이 국장이 내 손에 있는 원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아, 네!"

나는 얼떨결에 우렁차게 대답했다.

"저 주세요."

"넵!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또라이 국장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유유히 사라졌다. 저번과는 다른 머리 색이다. 적절히 섞인 검은 머리와 흰머리... 저 나이에 탈색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머리 색깔인데,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