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꼭두각시

내겐 너무 소중한 대학생 딱지

by 올대리

숨을 들이마시고 ‘17학번 신입생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랜카드가 붙은 정문을 통과했다. 나름 사전답사도 해봤는데 심장이 요동친다. 다시 뒤를 돌아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정문을 봤다. 대리석에 비친 내 모습과 눈이 마주쳤다. 필라테스에서 배운 심호흡을 다시 했다. 떨리는 마음을 바로잡고 캠퍼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또각또각 들리는 메리제인 플랫슈즈의 경쾌한 소리가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낯선 세계가 주는 불안감을 감춰주는 것 같달까.

벚꽃이 흩날리는 시끌벅적한 캠퍼스. 꿈만 같다. 포스트잇만 흩날리는 적막한 내 방과는 차원이 다르다. 형형색색의 과잠을 입은 수많은 학생들도 봄의 꽃처럼 느껴진다. 그때, 누군가 내게 포스터 한 장을 내밀었다.

“신입생 맞으시죠? 저희 동아리에 관심 있으시면 설명회에 꼭 놀러 오세요~”

“아하…. 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얼른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신입생이에요? 너무 예쁘시다~ 스펙 쌓는 데엔 우리 동아리가 짱인데! 놀러 와요!”

또 전단지가 왔다.

“아아, 네…. 감사합니다….”

신입생. 이거 되게 좋은 거구나. 살면서 이렇게까지 환영받아 본 적이 있었나. 흑백 같던 그동안의 삶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환영의 행진은 끝없이 이어졌다. 일부러 예정된 수업시간보다 빨리 학교에 도착했는데 그러길 잘했다. 허겁지겁 뒤늦게 왔다면 쏟아지는 환영을 놓쳤을 것이다. 양손이 포스터로 가득 찼다. 하나, 둘, 셋, 넷…, 열다섯! 무려 열다섯 장이다.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려 15개의 환영 인사를 받았다. 행복이 어딘가에 있다면 바로 지금일 터. 캠퍼스 곳곳을 찍어 SNS에 올렸다. 어제 새로 받은 네일이 보이게끔 홍보 포스터를 손에 쥐고 사진을 또 한 번 찍었다.




“안녕하세요! 응원단 인사드리겠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무리가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90도 인사를 한다. 곧이어 나오는 웅장한 음악 소리. 뿌리를 내린 듯한 거대한 스피커는 주변 사람들을 압도한다. 하얗고 푸른 제복은 군무에 맞춰 나풀거린다. 소매 끝 레이스의 금빛 자수가 유난히 반짝인다. 햇빛도 타이밍을 아는지 제시간에 쨍하고 지상을 비춘다. 모여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른다. 행복하다. 이 시간을 빼앗길까 두려울 정도로.

인파를 뚫고 잠시 후미진 그늘로 들어왔다. 머리를 매만지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거울을 보려고 가방에서 화장품을 찾는데, 야외 책상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한 여자가 보인다. 그 옆엔 큰 입간판이 있다. ‘기사 쓰는 신보사’ 대학 신보사 홍보부스다. 근데 왜 잠을 자고 있는 걸까. 홍보를 할 거면 하고 잠을 잘 거면 자는 게 낫지. 요즘은 신문사나 방송국이 예전 같이 인기 있진 않을 텐데. 야외 구경은 이쯤이면 됐고, 빠르게 화장을 수정하고 강의실 구경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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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기, 분홍색 치마 입으신 분?”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엎드려 자고 있던 그 여자다.

“네? 저, 저요?”

“네.”

“네?”

“신보사에 관심 있어서 온 거 아니에요?”

“아…, 그건 아니지만….”

관심은 있지만 관심 때문에 여기 있는 게 아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아니에요?”

“아니….”

“국장님! 이거 지금 컨펌 났는데 바로 진행해도 될까요?”

파란색 과잠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여자에게 뛰어오며 말했다.

“내가 한 번만 더 읽어봐도 괜찮을까?”

“네!”

“아, 그리고 홍보부스 볼 다음 타자는 누구야? 이것만 보고 가서 자야겠어. 졸려 미치겠네.”

“제 차례입니다. 국장님 이거 보고 숙직실 가시면 될 것 같아요. 방금 제가 숙직실에서 나와서 비어 있는 거 확인했습니다.”

“어 그래 고맙다. 그럼 이것만 읽어보고 일어날게.”

파란색 과잠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여자가 종이를 다 읽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여자는 나와 대화하던 것을 잊은 모양이다. 검은색과 하얀색이 무심한 듯 조화를 이룬 펜을 입에 물고 여자는 종이에 집중했다. 자다 일어난 사람 맞나. 종이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짧은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수수한 민낯이 멋있어 보였다.

“오케이. 다 좋은데, 두 번째 단락이 좀 늘어지는 감이 있으니까 어미를 바꾸든 수식어를 줄이든지 해서 길이만 조금 줄여줘. 나머진 완벽해. 합격. 나 간다.”

“네 알겠습니다. 국장님!”

국장은 맞은편 건물로 후다닥 들어갔다. 학생회관. 학교의 중심 건물이라 할 수 있는 공간. 언론사라 저 건물에 터를 둘 수 있었던 건가. 나는 파란색 과잠에게 다가갔다.

“저…. 원서 한 장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물론이죠. 신보사에 관심 있으세요? 궁금한 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생긴 거랑 다르게 굉장히 친절하고 따뜻한 말투다.

“네. 지금은 수업이 있어서 가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원서를 챙겨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아 수업 있으시구나. 그럼 시간 있을 때 저희 부스 찾아오시면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일단 후퇴. 신보사가 이 학교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의 입장에선 본인 팀이 최고이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인 장점만 말해줄 것이 뻔하다. 커뮤니티를 찾아보고 교내에 있는 신문을 직접 읽어봐야겠다.




한참을 헤매다 강의실에 들어갔다. 맨 뒤에 앉아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을 조망했다. 나이 지긋한 교수의 말에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형형색색의 머리통이다. 봄이란 계절과 어울리는 꽃밭이 여기에도 있었다. 대부분이 신입생인지라 한껏 멋을 부렸다. 머리통들은 교수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모두 적는 것 같았다. 교수의 말과 그들의 손이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인다. 갑자기 염색 욕구가 치솟는다.

“다음 수업부터는 영어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수업 자료는 커뮤니티에서 다운로드하시면 되고요, 원활한 수업을 위해서는 미리 준비해오시면 좋겠죠?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친절하면서 무게감 있는 교수의 눈빛엔 카리스마가 그득하다. 적절히 섞인 흰머리와 검은 머리의 비율이 그 분위기를 더욱 돋운다. 개강 전에 미리 공부를 해둬서 다행이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이르다. 삼수까지 했으니 이들보다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