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금메달 위에 금메달 위에 금메달 위
찰칵. 대학 합격증을 캡처해서 SNS에 올렸다.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감옥에서 살다 나오면 이런 기분일까. 침대에 누워 공부의 흔적으로 도배된 방을 둘러봤다. 세상에 계획 대회가 있다면 1등은 단연코 내 것이 될 터. 공부에 최적화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내 방은 일렬로 붙은 포스트잇과 빠르게 꺼내볼 수 있도록 정리된 요약 노트는 물론 독서실 용 스탠드에 백색소음 기계까지 갖췄다. 개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금빛 다이어리다. 일 년, 한 달, 일주일, 하루 계획이 담긴 보물 같은 존재다. 하루마저도 작은 단위로 쪼개 1분의 오차도 없이 생활했다. 3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젠 이게 더 편하다. 언니의 발끝은 조금 따라간 것 같았다. 왠지 평생 이러고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똑똑똑.
“네.”
“작은 아가씨 전데요.”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
“이따 저녁에 아버지께서 레스토랑 예약해놓으셨대요. 6시까지 준비하시면 됩니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드디어 나도 가족 파티의 주인공이 되는구나. 야호!’
“네~ 알겠습니다.”
뭘 입고 가면 예쁘단 소릴 들을까. 기본적으로 단정하고 또 성숙해 보였으면 좋겠다. 인상이 밝아 보이는 연분홍빛 원피스를 입었다. 질끈 묶은 긴 머리카락을 풀어서 늘어뜨리고 고데기로 끝에만 웨이브를 넣었다. 한결 풍성해졌다. 헤어 오일로 마무리하니 찰랑찰랑하다. 공부하느라 묶여만 있었던 머리에게 미안한 순간이다. 화장은 유튜브에서 보고 따라 했다. 일명 꾸안꾸 메이크업. 최대한 연하게, 그러나 최대한 예쁘게. 틴트를 바른 입술을 뻐끔뻐끔했다. 준비 끝.
음, 이 은은한 클래식. 반가웠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 더욱이 오늘의 주인공은 나다. 멋을 부릴 대로 부려봤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다. 그래도 예쁘단 소리는 꼭 듣고 싶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은이, 오늘 좀 과하네. 앞으로 옷 입고 다닐 일 많을 텐데, 이것저것 사서 옷장에 넣어 놓을게.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하고. 금아 너 받는 메이크업 선생님한테 은이 좀 봐달라고 할 수 있겠니? 부탁 좀 하자.”
“네, 엄마.”
언니가 대답했다.
‘별론가….’
내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내게 말할 기회는 주지 않는다. 언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비슷한 옷에 비슷한 메이크업에 비슷한 액세서리인데,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
“은이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근데 좀 많이 늦은 거 알지? 휴학할 생각 말고 얼른 졸업해서 자리 잡도록 해. 영문과니까 유학 가는 게 좋겠지? 졸업하면 미국으로 알아봐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아빠가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
“네….”
다소 기죽은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건 숨겨야 하는데.
“서울대는 아니니까 어느 정도 핸디캡이 있는 거 명심하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장실로 갔다. 먹은 음식을 모두 게워냈다.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왼쪽 다섯 손가락에 바늘을 찔렀다. 검붉은 피가 새어 나온다. 꽉 막힌 것 같아 손가락을 세게 눌렀다. 검붉은 정도가 아니라 검은색에 가깝다. 휴지로 손을 닦고는 새로운 금빛 다이어리를 펼쳤다.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입학할 수는 없다. 영어를 듣고 말하는 데엔 별 무리는 없지만 옛 문학을 읽고 토론하는 데엔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이런저런 영어수업을 들으면서 다니는 게 좋겠고, 자격증은 1학년 때 미리 따 놓는 것이 유리하다고 하니 지금부터 준비하면 될 것이다. 어느덧 금빛 다이어리엔 글씨가 빼곡하게 찼다. 책상 위엔 새로운 포스트잇들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