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이 되고 싶은 만년 2등의 삶
스테이크 한 점에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 음, 미각이 자극된다. 그러나 표정은 근엄할 것. 생각이나 감정 따위를 들켜선 안 된다. 품위가 없다나 뭐라나. 더욱이 이렇게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는 뭐든 최소한으로만 드러내야 마땅하다. 아무리 기뻐도. 저기, 저 언니처럼.
“은아, 음식은 입에 맞아?”
기품 있게 스테이크를 써는 언니의 손가락이 잠깐 멈춘다. 이곳에서 들리는 은은한 클래식과 어울리는 미소로 나를 쳐다본다. 유달리 초롱초롱한 두 눈과 뽀얀 피부가 돋보인다. 아마 언니는 알 거다.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
“응.”
오늘 이 자리는 언니를 위해 마련됐다. 나보다 8살이 많은 친언니 김금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 것도 모자라 로스쿨에 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우리 집의 영원한 금메달리스트인줄 알았는데,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온 동네에서 금메달을 딸 작정인가보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금아. 뭐 필요한 건 없니?”
아빠가 언니한테 물었다. 나는 새로 나온 태블릿 PC랑 무선 이어폰이 갖고 싶은데.
“좀 더 생각해보고 말씀드릴게요. 감사해요 아빠.”
말투도 대답도 모범 답안이다. 골똘히 생각하며 한 템포, 나긋나긋한 웃음소리로 또 한 템포. 내가 부모라도 사랑해줄 수밖에 없는 자식이다. 외모와 지성과 교양까지 겸비한 완벽한 저 사람이 내 친언니라니. 나도 8년 뒤엔 언니처럼 될 수 있을까. 언니처럼 되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은아, 입에 음식 묻었어.”
엄마가 나긋하게 말했다. 언니가 티슈를 내 쪽으로 옮겨준다. 고기를 씹다말고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았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우리 집은 지켜야 할 식사 규칙이 너무 많다. 이것만 덜 외웠어도 수능 문제 하나는 더 맞혔을 거다. 적은 양을 천천히 먹되, 스무 번은 씹고 삼킬 것. 되도록 입가에 음식물을 묻히지 않되, 묻었다면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고 티슈로 닦을 것. 음식이 입 안에 없을 때에만 대화를 나누되, 만약 음식물이 입 안에 있는데 상대방이 말을 걸어왔다면 무안하지 않게 잠시 미소로 화답할 것.
“네, 엄마.”
나는 곧장 티슈로 립스틱을 찍어내듯 살짝 닦았다.
“은이는 공부 언제부터 시작하지?”
아빠가 말했다. 하기야 아빠 엄마가 내가 받아 온 대학 합격증을 맘에 들어 할 리 없었다. 그래도 나는 대학생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닌가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4라니. 고3보다 무서운 게 고4다. 친구들은 모두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됐다. 나만 성인이 될 수 없는 걸까?
“어…, 바로 시작 할게요….”
골똘히 생각하며 두 템포, 미소는커녕 음울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두 템포를 끌었다. 이게 바로 나와 언니의 차이다. 답안과 오답의 거리.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언니가 타이밍 좋게 의자를 조용히 뒤로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저도….”
이 때다 싶어 고개를 푹 숙이고 쫄래쫄래 언니를 따라갔다.
“필요한 거 없어 은아?”
언니가 손을 씻으면서 말했다.
“태블릿 PC랑 무선 이어폰.”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체할 것 같은 식사 시간이 끝났다. 밥 한 번 먹는 일이 이렇게나 피곤하다니. 방에 들어가서 손 좀 따고 눕고 싶다. 19년을 살아도 이 집 식사 분위기엔 도통 적응이 안 된다. 만성 소화불량은 필시 이곳에서 오는 것이리라. 내 방 개인 냉장고에는 가스 활명수가 가득한데, 대학생이 되면 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앞으로 몇 병이나 더 마시려나.
“은아, 슬리퍼 반대로 신었다.”
현관에서 아빠가 말했다. 정신이 없긴 없는 모양이다. 명문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입학하지 말라는 내 부모님. 아니, 엄연히 따지자면 인서울은 했다. 그건 명문대가 아닌 건가. 어디까지가 명문대고 어디서부터가 비명문대일까.
“아, 네.”
나는 슬리퍼를 고쳐 신고 잽싸게 방 쪽으로 몸을 틀었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공부 열심히 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요즘은 잘만 하면 일반고에서도 서울대 갈 수 있다더라.”
엄숙한 아빠의 목소리. 우리 집에서 일반고에 입학한 사람은 나뿐이다. 고로 이 집안에서 나는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다. 일반고에 다니지만 일반인은 될 수 없다.
“네….”
얼른 대답하고 방으로 달려갔다.
“은아, 근데 너 좀 살이 붙은 거 같다?”
그 때, 엄마가 한 마디 보탰다. 기어코 살이 쪘구나 김은. 매 끼니마다 꾹 참고 한 숟가락씩 남겼는데. 그래도 스콘은 포기할 수가 없다. 요 며칠 친구가 유명한 집에서 사온 거라며 스콘을 무료 나눔 해줬더랬지. 살 찔까봐 노심초사하며 반개씩만 먹었는데…. 하긴 고3에겐 움직일 시간이 없다. 모든 활동에 제약을 받는 시기가 아닌가. 인류의 역사 이래 이렇게나 안 움직이는 세대가 있었을까. 움직이라고 만든 수많은 관절들이 아까울 정도다.
“아 그래요? 좀 빼야하나….”
거역은 금물이다. 쪘다면 찐 거다.
“언니 다니는 필라테스 너도 다닐래? 끊어줄까? 공부도 공부지만 여자가 관리는 해야지. 정 시간 안 난다 싶으면 집으로 선생님 불러줄게.”
‘네 알겠습니다. 최 교수님.’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집은 됐고, 언니랑 같이 다닐 게요.”
“그래 이왕이면 언니랑 같이 가. 금아, 쟤 데리고 가서 운동 좀 시키고 공부하는 것도 좀 봐주고.”
최 교수는 말을 마치자마자 꼿꼿한 자세로 서재로 들어갔다. 집에 와서도 연구에만 매진하는 엄마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늘 같은 시간대에 사는 사람처럼 한결 같고 또 어지간하다. 엄마가 방문을 슬며시 닫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똑똑똑.
“은아, 언닌데.”
방문을 열자마자 언니가 들어왔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난 분명히 봤다. 내 방을 스캔하는 언니의 눈빛을.
‘뭐야 엄마 아빠 사주 받아서 온 거라면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체했으니까 일단 손 좀 따고….’
“너 요즘 단거 많이 먹어? 피부가 많이 안 좋아진 거 같더라고. 이거 언니 쓰는 거니까 예민할 때마다 발라.”
‘그럼 그렇지.’
최 교수가 살쪘다고 할 때 옆에서 왜 안 거드나 했는데 얄미워 죽겠다. 꽃다운 이팔청춘을 언니가 알아? 가만히 있어도 여드름이 생기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나이를 좀 먹으면 단 걸 먹어도 티가 안 나려나.
“알았어.”
“아, 그리고.”
‘또 왜, 또 뭐! 내가 또 뭘 잘못한 건데.’
“아까 네가 말했던 태블릿 PC랑 무선 이어폰 내일 온대. 언니가 너 공부하는 데 필요한 거 다 준비해서 줄 테니까 공부 열심히 해.”
언니는 제 할 말만 하고는 나갔다. 이 집 식구들의 특징이다. 지겹다 지겨워. 끝없는 잔소리의 행렬. 서랍에서 바늘을 꺼내 왼쪽 다섯 손가락을 찔렀다. 맑고 빨간 피가 몽글몽글 맺힌다. 시커먼 피가 나올 줄 알았는데, 마음만 체했나. 반대편 손가락도 따려다가 관뒀다. 몸이 안 체했다는데 어쩌랴. 휴지로 피를 닦고 언니가 놓고 간 화장품을 봤다. 언니가 아무 화장품이나 줬을 리 없다. 분명 좋은 거다. 서랍을 열었다. 언니와 최 교수가 준 뜯지도 않은 화장품이 가득하다. 아무리 비싸고 좋아도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나는 언니와 최 교수가 준 화장품이 맞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지이이이잉. 문자가 왔다.
언니가 내일 아버지 지인들과 모임이 있어서 필라테스는 오전으로 잡았어. 10시에 출발할 테니까 미리 준비해. 운동복은 언니가 준비할게.
또 언니만 가는 구나. 아빠랑 최 교수는 모든 모임을 늘 언니와 동행한다. 나는 어려서 데려갈 수 없다지만 누가 봐도 거짓말이다. 언니가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한 나이가 돼도 나는 가지 못했다. 어렸을 적부터 영재 소리를 듣고 자란 팔방미인 언니와 비교 되는 건 당연하니까.
기어코 모임에 따라간 적이 있다. 그게 마지막이 됐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언니에게만 쏟아졌다. 어쩜 이렇게 인형처럼 예뻐요?, 연예인 해도 되겠다, 애가 벌써 이렇게 예쁘면 어떡해요?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주변에 다른 고래들도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칭찬 받지 못한 고래는 칭찬을 갈망한다. 칭찬을 받은 저 고래가 되고 싶어 한다.
모임에 다녀온 다음 날, 언니의 방에 들어가 언니의 옷을 입고, 언니의 목걸이를 걸어보고, 언니의 화장품을 발랐다. 흐뭇한 마음으로 거울을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김금이 아니라는 걸. 휴지로 얼굴을 뭉개듯 화장을 지웠다. 너무 세게 문질렀는지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의 옷자락으로 눈물을 닦았다. 눈물은 금세 언니의 옷을 적셨다. 김금은 아니더라도 김금 같은 김은은 되고 싶다. 한집에서 태어났으니 조금만 노력하면 나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응 알겠어.
답장을 보내고 휴대폰 전원을 껐다. 심란한 잠에 빠졌다.
“악, 윽, 억.”
몸이 단단하게 굳었는지 동작 하나에 신음 소리 한 번이다. 유연하고 고급스러운 몸짓으로 선생님을 따라하는 언니와는 정 반대다.
“동생 분은 언니랑 딴판이네요.”
필라테스 선생님이 웃으면서 말을 잇는다.
“음, 가만 보면 분위기는 닮았는데, 어설픈 금 님 버전이랄까? 하여튼 자매는 자매네요.”
어설프게 닮은 건 또 뭐람. 못생긴 언니 버전이란 건가.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고요, 다음에도 꼭 언니 손잡고 나오세요. 은 님.”
언니와 집에 도착했다. 삭신이 쑤신다. 현관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슬리퍼 좌우를 확인하고 신었다. 센터에서 씻고 왔으니 따로 씻을 필요는 없고, 배고픈데 아주머니께 밥이나 차려달라고 해야겠다.
“저 아주머니, 지금 점심 식사 할 수 있을까요?”
“네. 바로 준비 해드릴게요.”
“감사합니….”
라고 하는 순간, 언니가 말을 잘랐다.
“아주머니, 은이 지금 식단 조절해야 해서 샐러드로 준비해주세요. 저는 나가서 먹을 거니까 1인분만 준비해 주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샐러드라니…. 한참 성장할 나이에 샐러드라니! 아니, 난 이제 고4니까 성장은 끝났겠구나. 몸이라도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 감사해야 하나.’
다양한 초록빛을 뽐내는 샐러드 야채 위에 먹기 좋게 썰린 붉은 토마토. 그릇을 감싼 듯 가장자리에 펼쳐진 리코타 치즈까지. 크, 우리 아주머니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 샐러드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다. 물론 샐러드 자체를 즐겨 먹진 않지만. 아삭아삭한 야채의 식감과 어우러진 말랑한 토마토의 과즙, 여기에 부드럽고 고소한 리코타 치즈 한입이면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다. 레스토랑에서 주는 식전 빵이 없는 게 좀 아쉽지만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점심식사였다.
“다 먹었어? 여기, 이 거.”
준비를 마치고 나온 언니가 태블릿 PC와 무선 이어폰을 내밀었다. 단아한 연분홍색 원피스에 길게 늘어뜨린 탱글탱글하고도 검은 머리칼. 안 한 듯한 연한 메이크업까지 완벽하다. 언니는 본판이 워낙에 예뻐 메이크업을 안 해도 예쁘지만 손길이 들어가면 그 예쁨이 배가 된다. 피부에선 광이 나고, 또렷한 이목구비는 더욱 선명해진다.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거기에 변호사 시험에까지 합격했으니 오늘 모임에선 얼마나 더 빛을 발할까. 나는 대답도 잊고 물끄러미 언니를 쳐다봤다.
“뭐, 할 말 있어?”
“아, 아니…. 잘 다녀와.”
“오늘부터 공부 열심히 해. 그래야 다음 모임엔 같이 나갈 거 아냐?”
“….”
언니는 하이힐을 신고 현관을 나섰다. 또각또각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나는 태블릿 PC를 챙겨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모임에 나가는 언니가 너무 부럽다. 내년이면 나도 웃으면서 언니를 따라나설 수 있을까. 여기 내 방에 갇혀 공부만 하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을까.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는 책상에 앉아 책을 폈다.
1년 후, 나는 또 다시 인서울 대학에 합격했다.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라인에 가까워졌지만 아빠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SKY가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단다. 그래서 나는 고5가 되었다. 어른이 된 친구들은 한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전공서적을 옆에 낀 채 캠퍼스를 거니는 모습이 SNS에 도배됐다.
“은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니까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말인 줄 알지?”
“….”
“거기서 더 나이 먹고 대학가면 누구한테 안 좋겠어? 널 위해서 하는 소리야.”
“네….”
“이제 그만 평범해지자. 아빠는 널 믿는다.”
역시나 아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그만 평범해지자니. SKY에 가지 못한 건 내 잘못이 맞다. 그런데, 잘못을 저지르면 평범하지 못한 건가. 하긴, 평범하지 못한 내게 평범함을 논할 자격은 없다. 이 집안에서 원하는 평범함을 갖췄을 때 비로소 평범함을 이야기할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때까진 그저 입을 다물고 생각을 멈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범함의 루트에 안착하는 가장 빠른 길이이기 때문이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작은 아가씨, 과외 선생님 오셨습니다.”
“아, 네….”
숨 쉴 틈이 없다. 숨을 쉬려면 SKY에 가야 한다.
그리고 또 1년 뒤, 나는 비로소 고등학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