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나만 몰랐었던 이야기 1

짝사랑이 될 수도 있는 연애

by 올대리

"야, 김은!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제 그만 써."

"제발 5분만. 이것만 마무리하고 가자. 응?"

"너, 딱 5분이다. 알람 맞춘다."

나는 2년째 신보사에서 영자신문을 담당하고 있다. 국장한테 컨펌이 난 기사들을 팀원들과 영문으로 번역한다. 영문과 스펙에 이만한 게 없지. 다행히 가족들의 반발도 없었다. 국장과도 친해졌다. 소문대로 또라이다. 밥 먹듯이 휴학은 해도 신보사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학교는 6년째 다니지만 이제야 3학년에 올라간다. 나와 같이. 2년 넘게 동고동락하는 바람에 식습관부터 잠자는 습관까지 공유하게 된 우리는 눈빛만 마주쳐도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로 통한다.

"땡이다. 가자."

"오케이."

노트북을 재빠르게 접어 가방에 쑤셔 넣고는 돈가스 집으로 향했다.




돈가스 집 테이블 위에 새로 발행된 신문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소스에 촉촉하게 젖은 왕돈가스와 샛노란색이 돋보이는 유자 샐러드가 포인트다. 색감이 다양하고 선명해야 인스타에서 잘 먹힌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인스타를 확인하는 편인데, 좋아요 개수가 많으면 하루가 더 잘 풀리는 느낌이랄까.

"다 됐냐?"

"응. 먹어, 먹어."

한 번은 국장한테 크게 삐졌었다. 사진 좀 찍으려는데 국장이 그새를 못 참고 음식을 다 헤집어 놓은 것이 아닌가.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야채볶음으로 만드는가 하면 토마토 파스타는 매운 볶음면으로 둔갑시킨다. 참다 참다 투정을 부렸다. 남자 친구한테도 부리지 않는 투정이 이상하게 국장 앞에서는 자연스레 나온다. 이후 국장은 나와 밥을 먹을 때면 음식이 나와도 손을 대지 않는다. 물론, 코는 댄다. 지금처럼.

"킁킁킁. 너 때문에 음식에 코를 들이대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어."

"풉. 코로 먹는 애피타이저라고 생각해."

"다 올렸냐? 팔로워도 많고 좋아요도 많고. 그 사람들은 내가 뒤에서 이렇게 희생하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저번에 네 사진 올린 거 봤지? 제대로 한몫했어. 좋아, 좋아."

"짜증 나. 네 성적 자랑 사진에 내가 왜 나온 건데."

저번 학기에 과에서 1등을 했다. 이게 다 금빛 다이어리 덕분이다. 이 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나는 금빛 다이어리를 더욱 맹신하게 됐다. 계획대로 일이 척척 진행되는 느낌이다. 금빛 다이어리에 학과 성적표를 붙이고 사진을 찍는데, 마침 그때 다이어리 뒤로 국장이 춤을 추며 지나갔다. 뒤에서 1등인가 2등을 했다면서.

"그거 반응 진짜 좋았어. 다음에 또 찍자. 응?"

"됐어. 우연히 찍히면 몰라도."

"아 찍자 찍자~~"

"계획을 가장한 우연을 만들어 볼게."

"아, 그럼 정소영. 아니, 아니. 정소영 선배님~ 그 계획에 말이야~"

"안 만나. 내가 그놈, 아니 네 남자 친구를 왜 만나냐? 아주 이럴 때만 선배님 소리야."

"귀신이네. 넌 쓸데없이 눈치가 너무 빨라."

"영 안 땡겨 걘."

"진짜 딱 한 번만 만나보면 안 돼? 날 어떤 눈빛으로 쳐다보는지만 그것만 봐주면 안 돼?"

"넌 그렇게..."

정소영은 말을 하다 말고 우악스럽게 돈가스를 입에 쑤셔 넣었다. 몇 번 씹는 시늉만 하더니 돈가스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목이 막혔는지 냉수를 콸콸 쏟아부었다.

"그렇게 뭐? 그렇게 뭐!"

나는 괜히 빈정이 상해 투덜거렸다.

"아 됐어. 네 연애는 네가 알아서 해."

나는 2년째 연애 중이다. 정소영과 함께 나간 미팅 자리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 남자 친구는 K대 약대생으로 스펙도 훌륭하고 외모도 훈훈하다. 조금, 아주 조금 까칠한 것 빼고는 완벽하다. 기분 나쁠 때 말을 걸면 안 되는데, 만약 걸어야 한다면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아직까지 남자 친구의 친구들을 만난 적이 없다. 보통 남자들은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주변인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안달 난다던데 남자 친구는 도통 말이 없다. 나는 되도록 남자 친구한테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뭔가를 요구하거나 싫어하는 티를 낸 적이 없다. 그래도 만난 지 2년이 넘었으면 지인 정도는 만나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내가 먼저 은근슬쩍 정소영을 소개할 틈만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소영이 싫단다. 미팅 때도 서로 앙숙이더니 다신 그 면상을 보고 싶지도 않단다.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나 사실 확신이 안 서서 그래."

"확신?"

"응.... 용희가 날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미친."

"그... 원래 제삼자가 봐야 더 잘 보인다잖아. 부탁 좀 할게. 응?"

"야. 김은."

"응..."

정소영의 정색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진짜 미안한데, 한 마디만 할게. 도저히 못 참겠어."

"어... 해."

"너 연애하고 있는 건 맞냐?"

"뭐?"

"반응 없는 짝사랑이야 그거."


5화 일러스트.png


침대에 앉아 손가락을 땄다. 검붉은 색도 아니지만 붉은색도 아니다. 평범한 피다. 괜찮은 상태라는 건가. 오늘도 용희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 우리가 연락을 많이 하는 커플은 아니지만.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오늘같이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물론, 자주는 아니다. 요즘 공부하느라 바빠서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바쁘거나 기분 나쁠 때 건드리지 않는 게 우리 커플의 공식 룰이다. 미래를 존중하기 위해서다. 서로에게 좋은 거다, 서로에게. 그런데 정소영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반응 없는 짝사랑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하네.




책상에 앉아 금빛 다이어리를 펼쳤다. 다음 주면 개강인데, 용희도 나만큼이나 준비할 게 많을 것이다. 수강신청도 성공했고, 당분간 발행할 신문도 미리 마무리 지었다. 이제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좀 더 모으고 졸업에 유리한 커리큘럼을 짜면 된다. 졸업에 가까워진 3학년인 만큼 더 하드한 계획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울 때만큼은 잡생각에서 자유로워진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질주하는 느낌. 이젠 종종 가족 모임에도 나가고, 아빠에게 얼추 인정도 받았다. 입학해서 지금까지 성적 장학금을 놓친 적도 없을뿐더러 신보사 활동까지 해내고 있으니까. 게다가 신보사는 작년에 우수 동아리 상도 받았다. 엄마의 기대에도 부응하고 있다. 살도 많이 뺐고, 이젠 제법 언니를 닮았단 소리도 듣는다. 이대로만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