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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Aug 24. 2021

마술인이여, 야망을 가져라!

마술인의 분석

    아루마시 브런치를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사과 말씀 드립니다. 요즘 트위치에서 방송하는데 (매일 저녁 9시 트위치 생방송!) 정신이 팔려 글쓰기를 멀리하고 말았네요. 다시 한 번 꾸준히 달려보도록... 아니 달리는 건 힘들고 천천히 걸어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른 카드가 중간에서 맨 위로 올라온다.

 

   카드 마술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현상은 무엇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는 무척 어렵다.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마술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름부터가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앰비셔스 카드(Ambitious card)다.


    앰비셔스 카드(이하 앰비셔스)의 현상은 무척 간단하다. 고른 카드가 중간에서 맨 위로 올라온다. 지금 당장 카드 마술을 연습하는 사람에게 가서 '마술 하나 보여주시겠어요?' 라고 묻는다면, 분명 많은 이들이 앰비셔스 카드를 시연할 것이다. 앰비셔스만큼 오랫동안, 꾸준히,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아온 카드 마술 현상이 또 있을까 싶다. 아마도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카드 마술은 정말 수없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앰비셔스일까?



앰비셔스는 신기할 수밖에 없는 마술이다. 


    관객의 시선에서 먼저 이야기해보면 앰비셔스는 어떤 카드 마술보다 직관적이다. 고른 카드를 마술사가 곧바로 맞히는 것도 충분히 신기하지만 고른 카드를 몰래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고른 카드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그걸 언제 어떻게 이동시켰을까?


    마술사가 아무 설명도 없이 관객이 고른 카드가 중간에 들어가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마술사가 신호를 주고 맨 위의 카드를 뒤집었는데, 거기서 고른 카드가 나타난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관객은 충분한 반응을 낼 것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현상이 단순하다는 것, 앰비셔스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관객도 바보가 아니다. 앰비셔스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단순한 현상'인데, 현상이 단순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의심할 수 있는 부분도 너무 많다. 의심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하게 이야기하겠지만, 마술사들은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간결하고 훌륭한 방안을 내놓았다. 바로 앰비셔스 카드를 한 번만 보여주고 끝내는 것이 아닌, 여러 번 연달아 보여주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앰비셔스 카드는 고른 카드가 맨 위로 올라온다는 단순한 현상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주어서 관객에게 의심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의심의 여지가 없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마술인 셈이다.




앰비셔스는 마술사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마술이다.


    마술사들의 시선에서는 조금 다른 이유로 앰비셔스 마술이 선호되는데, 그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우선 카드 마술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대부분의 '고른 카드 찾는 마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마술사가 고른 카드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부분과, 고른 카드를 극적으로 공개하는 부분이다. 후자는 리빌레이션Revelat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정말 수많은 방법들이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고른 카드에 대한 정보는 크게 '고른 카드가 무엇인가?'(ex. 관객이 고른 카드가 3하트라는 것을 몰래 알아냄) 와 '고른 카드는 어디에 있는가?'(ex. 관객이 고른 카드가 21번째에 있다는 것을 몰래 알아냄)로 나뉜다. 이 내용은 후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테니, 다시 앰비셔스 이야기로 돌아가자.


    앰비셔스 마술은 '고른 카드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마술이다. 그러나 단순히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카드 컨트롤card control'이라는 조금 더 적극적인 기법을 사용한다. 카드 컨트롤은 말 그대로 원하는 카드를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키는 기법이다. 비단 앰비셔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카드 마술들에서 카드 컨트롤을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앰비셔스에서 주로 사용되는 카드 컨트롤은 '탑 컨트롤top control' 이라고 불리는데, 말 그대로 고른 카드를 관객 몰래 맨 위로 이동시키는 카드 컨트롤이다.


    앰비셔스 마술의 강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앰비셔스는 카드 컨트롤로만 이루어진 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리빌레이션이 무척 단순하다. '고른 카드가 위로 올라온다!'는 앞서 말했듯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고른 카드를 중간에 넣은 후에 어떻게든 맨 위로 올릴 수만 있다면, 곧바로 앰비셔스 마술을 할 수 있다.




앰비셔스 카드의 가장 큰 비밀


    그렇다고 앰비셔스가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 앰비셔스는 무척 단순한 현상이기에 관객이 의심할 수 있는 포인트도 정해져있다. 그래서 앰비셔스 마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제약'과 그에 따른 마술의 '구조'다. 우선 관객의 입장에서, 그들이 의심할 만한 부분을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관객이 아무 카드를 한 장 고른다. 그리고 마술사는 그 카드를 카드 뭉치 중간에 집어 넣는다. 마술사는 신호를 주고 그 카드는 맨 위로 올라온다.


    모든 마술이 그러하듯 앰비셔스를 본 관객도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이것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의심'해보는 것이다. 앰비셔스 카드에 대한 관객들의 의심은 수십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1. 고른 카드와 같은 카드를 한 장 더 사용했을 것이다.

2. 고른 카드를 중간에 넣은 척하고 실제로 중간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3. 고른 카드를 중간에 넣기 전에 바꿔치기했을 것이다.

4. 중간에 넣은 고른 카드를 손기술을 통해 빼돌린 후, 몰래 맨 위에 올려두었을 것이다.

...


    앰비셔스 카드를 잘하는 마술사라면, 이러한 의심들을 다음과 같은 체계적인 구성으로 각개격파해 나갈 것이다. 


1. 고른 카드와 같은 카드를 한 장 더 사용했을 것이다.

     > 카드에 서명을 받는다면 같은 카드를 두 장 사용하기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2. 고른 카드를 중간에 넣은 척하고 실제로 중간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 카드를 펼쳐서 고른 카드가 중간에 들어간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3. 고른 카드를 중간에 넣기 전에 바꿔치기했을 것이다.

     > 고른 카드를 중간에 완전히 집어넣기 전에 앞면을 보여준다.

4. 중간에 넣은 고른 카드를 손기술을 통해 빼돌린 후, 몰래 맨 위에 올려두었을 것이다.

      > 관객이 직접 고른 카드를 중간에 집어 넣는다.

...


     완벽주의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관객이 품을 수 있는 다양한 의심을 모두 한꺼번에 격파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기법을 찾아야겠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이상적인 기법'을 찾아내는 것은 무척 힘들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결점이 없는 이상적인 슈퍼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각자의 장점을 지닌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법.


    대표적인 앰비셔스 카드의 기법 두 가지를 살펴보자. 하나는 틸트Tilt라는 기법이고, 나머지 하나는 더블 턴오버Double turnover라는 기법이다. 우선 틸트의 경우, 3번 의심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다. 중간에 들어가는 카드가 고른 카드라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드가 진짜로 중간에 들어간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 없다는 부분에서 2번 의심에 취약하다.


    그러나 그 다음에 더블 턴오버를 사용해서 마술을 이어나가면 2번 의심을 해소해 줄 수 있다. 카드가 진짜로 중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신 이 경우 중간에 들어가는 카드가 고른 카드라는 것을 보여줄 수 없다. 따라서 3번 의심에 대해 취약해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하지만 3번 의심은 직전 페이즈*에 해소되었기에 관객의 의심은 전혀 새로운 방향을 향한다. 의심의 끈이 이어지다보면 어느 순간 관객은 더 이상 의심할 부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의심을 포기한 다. 관객에게 남은 건 무방비한 상태로 신기함을 마주하는 일 뿐이다.


    앰비셔스 카드의 가장 큰 비밀은 바로 '치밀한 구성'이다.




여담


    예전에 마술모임에서 누군가 앰비셔스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야기와 함께 진행한 적이 있었다. 구체적인 마술의 진행이나 사용한 기법, 심지어 누가 이 마술을 보여주었는지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가 덧붙인 이야기만큼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어떤 카드는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재능을 가진 카드는 다른 평범한 카드들과 확연히 구별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 카드는 언제나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움직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야망을 품고 세상의 위를 향해 솟구쳐 오른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매력적이다. 만약 카드 한 뭉치가 이 세상을 상징한다면, 그래서 낱장의 카드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각각 상징한다면 그 중에는 분명히 야망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더 높은 곳으로, 더 우월한 곳으로, 더 아름다운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보고 경이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Ambitious'한 삶을 살 수는 없다. 평범한 삶이 목표인 이들도 분명히 있다. 지금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이 전부인 이들도 이 세상 어딘가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한 때 다른 이들과 구별되었다는 느낌을 안고 살았다. 삶을 사는 것이 그 자체로 일종의 형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요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 상태에서 거대한 야망을 갖고 원대한 꿈을 갖기란 불가능했다. 거기서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그러한 야망이 어쩌면 내게는 허락되어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절망감이었다.



     보리스 와일드는 자신의 라이브 렉쳐 '클래식스 곤 와일드Classics Gone Wild'에서 앰비셔스 카드를 다르게 해석했다. 앰비셔스라고 하면 보통 고른 카드가 맨 위로 올라오는 현상을 떠올리는데, 이 현상의 핵심은 그 카드가 다른 카드들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른 카드를 다른 카드들과 '구별'시키는 방법이 그 카드를 맨 위로 올리는 것밖에 없을까? 보리스 와일드는 색다른 답변을 내놓는다. 나도 나만의 답변을 남겨두고 싶다.



    모든 이들이 맨 위를 향할 필요는 없다.






*페이즈phase : 마술 공연을 구성하는 단위 중 하나, 페이즈가 모여서 루틴이 되고, 루틴이 모여서 액트가 되며, 하나 이상의 액트를 모아 공연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페이즈는 보통 현상을 단위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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