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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Aug 29. 2021

나는 바란다 당신의 실패

헤클러에 대하여 1편

    마술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관객 유형 (아마도) 1위

    마술 초보들이 마술을 접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

    별의 별 신기한 재주를 가진 마술사들조차 이들을 두려워한다.


    오늘의 주제는 헤클러다.


    헤클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으면 바로 어떤 사람들인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술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이들"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마술사의 진행을 방해한다. 도구를 험악하게 다루는 사람들. 마술사의 손목을 갑자기 붙잡는 사람들. 이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오늘은 헤클러의 심리를 추측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의심한다고 무조건 헤클러가 아니다.


    우선 헤클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싶다. 몇몇 마술인들은 종종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지 않는 지적 생물체들을 한데 묶어 헤클러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고른 카드를 받고 마술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카드를 섞어도 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마술을 할 때마다 손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친구들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하죠?'


    그러나 많은 경우는 그저 궁금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어느 순간부터 마술의 올바른 감상 태도가 '의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관객에게 '의심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심을 하는 것은 관객의 자유이고, 마술사는 그 의심을 무너뜨려야할 의무가 있다. 단순히 의심하거나 질문한다고 해서 그들이 헤클러로 취급당하는 것은 무척 억울하다.


    그럼 '의심하는 관객'과 '방해하는 관객'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카드를 섞어도 되냐고 묻는 것은 방해가 아니다. 그러나 다짜고짜 카드를 힘으로 뺏어간다면? 이는 분명한 방해 행위다. 무대 위로 불려나간 관객이 의도치 않게 마술사와 부딪혀 카드를 떨어뜨렸다면, 이것은 우연한 사고다. 하지만 마술사의 손을 쳐서 의도적으로 카드를 떨어뜨렸다면? 그는 명백한 헤클러다. 다음 질문을 통해 우리는 헤클러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당신이 실패하기를 바라는가?"




그는 관심을 원한다.


    그는 대체 왜 마술이 실패하기를 바랄까? 그는 표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울 수도 있다. "남을 속이는 것은 부당하잖아, 이 사기꾼!" 하지만 인생의 얼마나 많은 요소가 우리를 정당하게 속이고 있는가? 아마도 그는 TV 드라마를 보면서 "저 배우는 실제로 총을 맞지 않고 총에 맞은 척을 했군! 감히 나를 속이다니!" 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마술을 방해하기 위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는가?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내면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숨어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저 사람은 뭔데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 저건 그냥 속임수일 뿐인데!"


    헤클러가 마술이 실패하길 바라고, 당신이 망신당하길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의 입장에서 마술사는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몇 가지 '사소한 속임수'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받는다. 물론 그 '사소한 속임수'를 위해 마술사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고 공을 들이는지 그는 모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당신의 마술을 방해하는 헤클러에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그에게 관심을 주어라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관심을 주는 것도 좋다. 마술 중에는 마술사가 아니라 관객에게 박수를 줄 수 있는 마술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했듯, 헤클러가 우리의 왼쪽 뺨을 때렸을 때, 오른쪽 뺨을 내미는 것이다. 만약 그가 원하는 수준의 관심을 줄 수 있다면 그는 마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조용히 물러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망상에 가깝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4대 성인*들조차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완벽히 컨트롤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만약 당신이 넓은 아량으로 당신의 마술을 방해하는 사람에게까지 선량하고 친절하게 대응한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그가 순순히 물러날까?


    헤클러는 관심을 얻고 싶어하고, 모두가 그러하듯 그의 욕심 역시 쉽게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헤클러는 당신을 자극하고 방해하는 것이 용납된다고 생각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당신을 방해하려 들지도 모른다. 당신의 친절함이 오히려 당신의 마술에 독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헤클러는 당신과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강경한 방법이든 상냥한 방법이든 당신은 그를 상대로 승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헤클러가 원하는 것은 당신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신을 링 위로 끌어올리고 싶어한다. 당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 응해선 안 된다. 그게 바로 그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와의 싸움 자체를 피해야 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은,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관심을 주지 마라


    내가 모든 마술인들에게 공통적으로 권하는, 다윈 오티즈의 훌륭한 저서 [스트롱 매직]에는 헤클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실려 있다. 방해 공작의 종류와 그에 따른 대응법 등등. 실전 경험이 부족한 필자를 대신해서, [스트롱 매직]에 소개된 다윈 오티즈의 조언을 일부 소개한다.


    다윈 오티즈의 대처는 일관적이다.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 마치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술을 이어가는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제가 만약 헤클러에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욱 미쳐 날뛰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는 당신의 마술이 망하기만을 바라는 광기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정교한 계산을 통해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심지어 불쌍하기까지 한 사람이다. 만약 그가 철저히 무시당한다면, 그는 당신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해를 그만 둘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계속해서 방해를 이어나가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까?


    다윈 오티즈의 대응법 중 하나는 우선 한 마디의 농담이다. 그 농담은 재치있는 농담이면서 동시에 '정말로 제가 부러운가 봅니다.' 라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관객들은 당신의 편이 되어 헤클러에게 무언의 압박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멈추지 않는다면, 다윈 오티즈는 필살기를 사용한다. 마술을 중단하는 것이다. 관객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마술을 멈추는 것. 아마도 관객들은 헤클러에게  


    다윈 오티즈는 이에 대해 두 가지 부분을 지적한다. 첫 번째는 언제나 마술사는 헤클러가 아니라 관중들에게 말한다는 점이다. 헤클러에 대해서 마술사는 일언반구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관중들도 헤클러에 대한 적대감이 충분히 쌓여있어야한다는 점이다. 헤클러의 무례한 행동을 보고 '저건 평범하고 일반적이군.'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헤클러에게 관심을 주지 마라.

    2. 나머지 관객들을 당신의 편으로 만들어라.




헤클러의 정체


    지금 여기서 당신에게 헤클러의 진짜 정체를 알려주도록 하겠다. 헤클러의 정체는 바로 평범하고 불운한 한 명의 사람이다. 그는 특별히 당신에게 악감정을 가져서 당신의 마술을 방해하는 악인이 아니다. 그는 학교나 직장, 사회 곳곳에서 자아에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다.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렸다고 느끼고, 스스로의 가치가 무척 낮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설 곳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기에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 자신에게 끌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의 실수라면 한 가지 잘못된 판단을 했을 뿐이다. 그 판단이란 바로 타인을 방해하면 자신에게 관심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것은 틀렸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고 관심을 받으면 나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잘못된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나는 마술인들이 누구보다 헤클러의 마음을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술을 시작한 이유부터가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자리를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나는 내가 마술을 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나와 같은 행운을 얻지 못했다. 우리가 '빌런'이라며 조롱하는 이들 역시 본질적으로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나 역시 헤클러를 만나면 다윈 오티즈의 조언을 따를 것이다. 그를 무시하고 관객들을 내 편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마술이 끝나면 조용히 그의 삶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그는 대체 어떤 이유가 있어서 얼굴도 모르는 타인의 마술을 망치고 싶었을까? 그의 삶은 어째서 그에게 그런 행동을 하도록 부추겼을까?


    어쩌면 그는 헤클러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가 내 마술을 방해하기로 결심하기 전에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그를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음 편에 계속~

    




    *4대 성인 : 예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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