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인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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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마술인들이 "다른 마술사들을 속일 수 있는 마술사."가 되고 싶어한다.
그 증거로 많은 마술인들이 다른 이들을 속이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어려운 기술을 연습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셀프워킹 트릭을 연구한다.
새로운 마술을 만드는 마술 크리에이터 PH님의 인기 역시 그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많은 마술인들이 마술을 연습할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된다.
마술인들 사이의 경쟁 속에서 새로운 마술이 탄생하고, 그 중에서 훌륭한 작품이 태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독이 되기 마련이다.
마술의 목적은 비마술인들에게 신기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몇 마술인들은 그 사실을 잊고, 마술이라는 장르를
마치 상대방을 속이지 못하는 쪽이 패배하는, 능력자 배틀물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다.
"윽... 저 녀석 언제 새로운 셀프워킹을 배워왔지?"
"안되겠어. 이쪽에서는 DPS로 승부를 보자!"
마술인들을 속일 수 없는 마술은 가치가 없는 마술일까?
마술인들을 속이지 못하는 마술사는 실력이 낮은 마술사일까?
나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 증거 중 하나는 마술인들을 속이지 못하는 마술 중에서도 훌륭한 마술이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레드 핫 마마(혹은 시카고 오프너)다.
이 마술은 난이도는 쉽지만 효과는 강력한 대표적인 명작 카드 마술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도 렉쳐노트에서 나온 클래식 콜렉션이라는 렉쳐의 가장 첫 번째 마술이며,
데럴의 렉쳐에서도, 마이클 아머의 렉쳐에서도 레드 핫 마마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마술인들이 레드 핫 마마를 한 번쯤은 공부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이 명작 마술은 마술인들 사이에서는 기피된다.
왜냐하면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마술 모임에 나가서 레드 핫 마마를 보여준다고 생각해보자.
다들 형식적인 리액션을 보여주고 다음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레드 핫 마마는 마술인들을 속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쁜 마술'인가?
몇 분 동안 카드를 세고 섞고 나누는 저 셀프워킹 마술이 더 '좋은 마술'일까?
마술인들은 자신을 속인 마술을 더 좋은 마술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판단은 관객이 자신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관객은 우리 마술인들과 전혀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
따라서 관객 입장에서 좋은 마술을 해야 한다.
물론 이 내용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이들도 있다.
만약 당신이 관객에게 신기한 마술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당신이 마술을 하는 이유가 오로지 다른 마술인을 속이기 위함이라면,
방금 읽은 내용은 전부 잊어버려도 된다.
비마술인 관객 없이 마술이라는 장르가 성립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 데이비스 스톤의 CLOSE-UP 이라는 책 속에는
"마술사를 속이기 위한 마술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챕터가 있다.
해당 챕터가 빈 페이지뿐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